넷플릭스에 공개된 애니매이션 <나의 행복한 결혼>을 소설 형식으로 리뷰합니다. 명문가의 딸로 태어났지만 계모와 여동생에게 학대받으며 살아왔던 미요가 남편인 키요카를 만나 어떻게 새로운 인생을 펼쳐가는지, 미요의 1인칭 시점으로 만나보겠습니다.

며칠 후에, 포목점 주인이 쿠도가를 찾아왔다.
나리와의 첫 데이트에서 봤던 여주인이었다. 포목점 주인을 보고, 유리에는 반가워서 어쩔 줄 몰랐다.
여자는 커다란 상자 여러 개를 차에 싣고 왔다.
운전사가 그것을 들고 유리에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에는 여자와 운전사를 당연하다는 듯 내 방으로 안내했다.
그 바람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당연히, 나리를 찾아왔는 줄 알았다.
그때, 나리 또한 집에 있었는데, 포목점 주인과는 인사를 마치고 곧장 서재로 갔다.
그래서 더더욱 나를 찾아온 여자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운전사는 내 방에 상자들을 놓아두고 밖으로 나갔다.
유리에가 차가운 음료라도 준비하겠다고 나가자, 방 안에는 나와 포목점 여주인 밖에 없었다.
여자는 나를 향해 잔잔하게 웃어 보이더니 물었다.
"쿠도 키요카 님과 함께 지내보니 어떠신가요?"
"모두들 잘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그러시군요."
우리는 그다음 잠깐 날씨 이야기를 했다.
사교적인 대화를 전혀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여자가 이끄는 말에 따라 그저 네, 아니오 정도로 밖에 답하지 못했다.
"어머나... 나를 기다려 주신 건가요?"
방 안에 들어온 유리에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여자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런 순간은 함께 봐야 좋지요."
유리에가 자리에 앉자, 여자는 맨 위의 상자를 바닥에 내리고, 뚜껑을 열었다.
하얀 겉종이를 헤치자, 아름다운 빛깔의 기모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떠신가요?"
나는 멍청하게 여자를 본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여자는 웃지 않고, 내 궁금증에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쿠도 키요카 님께서 그날 주문하고 가신 거랍니다."
그날 포목점에 들른 것이 그럼...
"도련님께서 마음을 이렇게 써주셨군요."
유리에의 말에,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해진 기모노를 기우기 위해 유리에에게 실과 바늘을 빌렸던 것이다.
그 사실을 나리께 전했으리라.
"도련님께서는 아가씨께서 명문가의 아가씨와는 달리 해진 기모노를 입고 계신 것을 의아해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날 있었던 일을 말씀드린 거랍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모노를 바라봤다.
포목점 여주인은 기모노를 꺼내, 내 몸에 대 주었다.
"역시, 내 눈썰미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마치 다른 색깔을 입힌 사람 같았다.
"그것 말고 이것도 한 번."
여자가 다른 상자를 꺼내자, 또 다른 빛깔의 기모노가 등장했다.
그것 또한 너무 고급스러운 비단이어서 이런 것을 내가 걸쳐도 되는 걸까, 하는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다.
"역시, 안목이 있으시네요."
유리에가 여자를 칭찬하자, 여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이것은 내 안목이 아니라, 쿠도 키요카 님의 안목이랍니다."
벚꽃색 기모노였다.
어머니의 벚꽃색과 같은 빛깔의 옷이었다.
여자는 그 기모노를 내 몸에 대었다.
"어머나, 색깔도. 딱이네요. 하얀 피부와도 잘 어울려서 당장 입혀 드리고 싶을 정도예요"
유리에는 문 밖의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잘 어울리죠?"
어느새, 나리가 와 있었던 것이다.
"나리... 이렇게 멋진 기모노를... 이렇게나 많이 받을 수는 없습니다."
"머리끈을 준 보답이다. 받아 둬."
무뚝뚝하게 이어진 대답이지만 난 이럴 때, 나리가 쑥스러워 그런 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감사에는 감사로...
나리가 원하는 내 대답은 그런 것이겠지.
"네."
조용하고 확신에 찬 내 대답을 듣고, 나리는 조금 웃었다.
며칠 뒤, 나는 고도씨를 초대하고 싶다고 나리께 말씀드렸다.
하나와의 재회와 기모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나리와 함께 일을 보는 분을 초대하여 대접한다면 나리의 면을 세워 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리는 괜찮다고 했지만, 모처럼 전하는 나의 요청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고도씨가 오는 당일, 나는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유리에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나 스스로 음식을 준비했다.
음식 준비를 마치고 난 뒤에는 난생처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치장했다.
나리가 맞춰 준 벚꽃색 기모노를 입었고, 입에는 살짝 연지까지 발랐다.
그 모든 것은 나리를 위한 것이었다.
나리는 고도씨와 함께 그날 저녁 집으로 오셨다.
"다녀오셨습니까."
현관 앞에서 나리와 고도씨를 맞이했다.
고도씨는 일전에 봤던 대로 무척이나 쾌활했다.
"너무 아름다우세요."
과장된 고도씨의 말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나리는 잠시 벚꽃색 기모노를 입은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몸에 대 보는 것 외에, 벚꽃색 기모노 차림은 처음이었다.
나리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의 눈이 내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당황했으나, 나리를 마주했다.
"너무 예뻐..."
내가 잘못 들었나? 나리가 그런 말을 할 분이 아닌데...
"네?"
나리는 내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서로 마주 보며, 머뭇대는 우리 두 사람을 보고 고도씨는
"그냥 가는 게 나으려나..." 하는 말을 우울하게 내뱉고는 기운 빠진 모양을 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라고 나는 공손하게 말했다.
손님상에 생선요리와 야채조림 등을 올렸다.
우와... 하면 놀라는 고도씨의 말에 괜히 기분이 으쓱해졌다.
"고도님, 한 잔 받으세요."
나는 술병을 들고, 고도씨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그리고 정식으로 인사를 드렸다.
"그날 하나를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냥 운전만 했을 뿐인 걸요."
"하지만 귀한 시간을 써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때 갑자기 고도씨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외쳤다.
"미요 씨, 이런 감사 인사는 처음 받아 봅니다. 너무 기뻐요. 무서운 대장님이랑 헤어지고 저랑 결혼하시죠!"
그 말에, 푸웃! 하고 나리가 마시던 술을 뱉었다.
"고노, 이 자식!"
"농담입니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런 말들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전했다.
"저기 고도씨... 마음은 감사하지만, 저는 나리의 곁에 있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내 말에 고도씨가 무척이나 당황하며 말했다.
"너무 진지하게... 사과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리고 끝에 뜻 모를 말을 덧붙였다.
"대장님도 결국 사람이었네요."
고도씨는 결국 술에 잔뜩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나리는 차 뒷좌석에 고도를 태우고는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
"앞으로 바빠질 건데, 술을 너무 좋아해서 큰일이야."
나리의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를 끼친 걸까요?"
"아니, 그런 뜻은 아니야."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고도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땐 좀 놀랐지만."
우물쭈물... 뭐라고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나리가 가만히 내 손을 잡았다.
"네가 바란 대로 잘 대접한 것 같아?"
"네... 나리 덕분에 고도님께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나리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채워 주었다.
언제까지나 그 따뜻함 속에 머물고 싶었다.
그렇게 행복한 하루였는데, 그날 밤 또다시 악몽을 꾸고 말았다.
꿈을 꿀 때는 깨어날 때까지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
특히 악몽은 더더욱 그렇다.
그 꿈속에서 나는 물 위에 서 있었다.
물은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시커맸다.
빨려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발 밑에서 사람들의 형상이 물보라처럼 모이더니,
나를 아래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그 알 수 없는 물속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그리고 몸 어딘가가 바닥에 닿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눈을 떠 보니 장소가 바뀌어 있었다.
어린 시절, 갇혔던 창고였다. 새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반성하기 전까지는 내 앞에 얼씬도 하지 말거라."
새어머니의 매서운 말에 내 몸은 부르르 떨렸다.
창고 문이 닫혔고, 나는 암흑 속에 갇혔다.
그리고 온몸이 무엇인가에 칭칭 감기는 것처럼 꼼짝 할 수도 없었다.
"누가... 나를 좀... 구해줘..."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괜찮아?"
멀리서 나리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리가 나를 위해서 와 주신 걸까? 하지만 너무나 캄캄해서 나리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 눈물을 닦아 주는 손길을 느꼈다.
"미요, 일어나!"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처음에는 또 다른 꿈인 줄 알았다.
나리의 품 안이었기 때문이다.
"가위에 눌린 것 같았는데... 악몽이라도 꾼 거야?"
나리의 목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것을 알아챈 순간부터,
악몽은 저 멀리 달아나고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나리는 여전히 떨리는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 일부러 떠올릴 필요 없어. 이상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하고."
"네..."
"기억해 둬.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반드시 달려가."
나라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알겠습니다, 나리."
그 뒤에 있을 일을 생각하면, 나는 그 말을 굳건히 믿고서 용기를 냈음이 분명했다.
반드시, 나리가 나를 찾아올 거라고.
다음 날 아침, 나리가 출근하고 나자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중에
나리를 위해 점심 도시락을 싸면 어떨까... 유리에에게 물었다.
"도련님께서는 바쁠 때면 식사를 거르기 일쑤이니, 지금쯤 시장할 거예요."
유리에의 말에 내가 물었다.
"직장에 찾아가면 폐가 되리까 걱정이에요."
"괜찮을 거예요. 준비가 끝나는 대로 함께 도련님을 뵈러 가시죠."
나는 먹기 편하도록 젓가락으로 집기 편한 음식으로 준비했다.
도시락이 준비된 후에는 치장을 했다.
이번에는 하늘색 기모노를 입었다.
큰 거울 앞에 섰다. 예전만큼 부끄럽지는 않았다.
솔직히, 점점 거울 보는 일이 즐거워졌다. 한 껏 밝아져 있는 내 얼굴이 거기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오래도록 바라왔던 모습인 것만 같았다.
"미요 님."
유리에가 나를 부르며 살며시, 방문을 열었다.
"이걸 들고 가시면 어떨까요?"
유리에는 하늘색 손가방을 들고 있었다.
"도련님께서 기모노와 어울리는 색상으로 준비해 두셨답니다."
"예뻐요..."
나는 하늘색 손가방을 받아 들었다.
"그럼, 가 볼까요? 점심시간에 맞춰야 하니 조금 서두르죠."
유리에의 말에 나는 서둘러 방문을 나서며 "네." 하고 말했다.
나리의 직장에 도착했다.
머뭇 거리는 나를 대신해 유리에가 쿠도가에서 키요카 님을 찾아왔다고 전해달라고 말해주었다.
잠시 후, 나리가 우리를 향해 뛰어 왔다.
"둘이 함께 웬일이야."
나리의 표정은 무슨 큰일이 났다고 들은 사람 같아 보였다.
"폐가 될까 하면서도... 식사는 제대로 하시는지 걱정이 되어, 도시락을 싸왔습니다."
내 말에 나리는 조금 안심하며 말했다.
"그랬구나.. 아무튼... 잠시 쉬었다 가지."
하지만 그때, "대장님! 어서 와 보시죠!" 하고 나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에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방해하면 안 되니 가보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급한 일이 있어서."
하고 나리는 도시락을 들고 다시 뛰어갔다.
"미요!"
나리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나리가 나를 향해 뛰어 오고 있었다.
"무슨..."
"미요, 부적은 갖고 있어?"
나리의 물음에 나는 선뜻 하늘색 손가방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네, 여기 있어요."
다시 또 나리를 부르는 목소리.
"데려다주고 싶은데, 조금 바빠서 말이지."
"괜찮아요. 바쁘신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신경 쓰지 마. 그럼 둘 다 조심히."
나와 유리에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나리가 안 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불현듯... 부적이 하늘색 손가방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떡해요? 부적을 두고 온 것 같아요."
내 말에, 유리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나! 네가 재촉한 탓이네요... 제가 주의해야 했어요."
"항상 몸에 지니겠다고 약속했는데..."
"곧장 집으로 돌아가시죠."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리께서 주신 소중한 부적인데...
새 손가방에 들떠서 깜빡하다니... 스스로를 자책하느라 주위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아니, 그럴 필요조차 없는 한적한 골목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 한 대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는 나와 유리에 사이를 갈랐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차 뒷문이 열리더니...
보이지 않는 뭔가가 내 몸을 휘어 감았다.
그리고 그 힘은 나를 차 안으로 떠밀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나는 그 힘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망연히 창문 밖으로 유리에를 바라보았다.
"미요 님!"
유리에의 외침이 들려왔다.
뭐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 또 보이지 않는 힘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불쾌한 냄새가 훅 코에 끼쳤고, 나는 기절해 버렸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나는 어제의 악몽처럼... 사이모리 가의 창고에 갇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