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공개된 애니매이션 <나의 행복한 결혼>을 소설 형식으로 리뷰합니다. 명문가의 딸로 태어났지만 계모와 여동생에게 학대받으며 살아왔던 미요가 남편인 키요카를 만나 어떻게 새로운 인생을 펼쳐가는지, 미요의 1인칭 시점으로 만나보겠습니다.
두 팔이 천장에서 내려온 밧줄에 묶여 매달려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어두움이 만들어진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무도 내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외치고 말았다.
"누가... 누가 좀 도와주세요... 제발!"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카야가 들어왔다. 그 뒤로는 새어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언니, 벌써 깼구나. 기분은 어때? 좋은 꿈 꿨나 모르겠네."
두 사람을 보자 미친 듯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두 사람이 나를 왜...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드디어 심장이 멎었나 했어."
뭔가 아쉽다는 목소리로 카야가 말했다.
"대체... 왜 이러세요?"
목소리가 떨렸다. 두 사람이 앞으로 벌이려는 일들이 내 인생을 뒤바꿔 놓을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정말 지긋지긋하구나. 얌전히 하인으로 살든지 어디서 객사나 하면 좋았을 텐데. 이 분수도 모르는 것!"
새어머니의 앙칼진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쿠도 님의 약혼자 자리를 당장 포기해! 똑똑히 들어. 네가 쿠도 님께 직접 혼담을 무르고 싶다고 말하는 거야."
두 사람은 내게서 빼앗아갈 것을 하나 더 찾아냈다. 그리고 늘 그랬던 방법으로 내게서 그것을 빼앗아가려고 한다.
"내가 알아서 해 볼게요, 엄마."
창고 선반의 물건을 뒤지고 있던 카야가 한껏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언니한테 쿠도 가문의 안주인 자리는 너무 벅차지?"
카야가 가위를 찾아냈다. 가위로 허공을 몇 번 잘라보던 카야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그 가위를 들고,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카야의 손에 들린 가위가 흔들렸다.
"그렇게 예쁜 기모노까지 걸치고... 주제 파악이 안 되나 봐."
철컹... 철컹... 가위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언니, 거절하겠다고 약속해 줄래?"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싫다면 그 소중한 기모노를... 언니한테 어울리도록 손봐 주는 수밖에 없거든."
나한테 어울리도록... 내게 어울리도록... 이건 나리께서 직접 골라주신 비단으로 지어진 기모노인데... 내게 어울릴 만한 비단으로...
"어때?"
카야가 가위를 내 몸 가까이 들이댔다. 차가운 금속이 느껴지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카야는 내 귓가에 가위질을 했다. 귓속을 파고는 가위질 소리가 내 목숨을 잘라내는 것만 같았다.
"흐흐흐... 이렇게 비싼 기모노를 사 달라는 부탁도 했잖아. 혼담을 무르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섬뜩하리 마치 차가운 목소리로 카야가 말을 이었다.
"내가 쿠도 님과 약혼하면 언니한테 코우지 씨를 돌려줄게. 말해 봐, 언니. 쿠도 님께 뭐라고 해야 할까?"
가위가 내 기모노 앞섬까지 가까이 왔다.
"그만해요..."
내 목소리를 가르듯 가위가 기어코 기모노 앞섬을 잘라냈다.
"안돼!"
나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새어머니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야."
그녀의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나는 몸부림쳤다. 손목에 묶인 밧줄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카야의 손에 든 가위가 내 목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니 입으로 확실하게 말해 줘. 혼담을 무르겠다고."
카야는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일 만을 시켜왔다. 몸은 힘들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평생 포기하는 일만을 하고 살아왔다.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쿠도 님을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왜 그래? 목소리가 안 나와?"
카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위를 내 목에서 치우더니 말했다.
"이러면 도움이 되려나?"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는 분명하게 내 목소리를 들려줬다.
"싫어요. 그런 부탁은 거절하겠습니다."
그 순간, 뺨에서 뜨거운 아픔이 솟구쳤다. 새어머니가 내 뺨을 휘갈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새어머니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입이 일그러졌다.
"어머니, 저한테 맡기세요."
카야가 들고 있던 가위를 내 던지고, 다른 단단한 가위를 골라내더니 밧줄을 끊어냈다. 나는 바닥에 풀썩 쓰러지고야 말았다.
"역시, 언니는 바닥이 참 잘 어울려."
온몸이 땀으로 축축했고, 바닥은 너무나 차가웠다.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있잖아... 언니는 반푼이지? 견귀의 재능도 없을뿐더러 장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잖아. 그런 우리 가문의 수치가 쿠도 님의 아내가 되다니 처음부터 말이 안 됐던 거야."
카야의 말이 아프게 내 몸 위에 내리 꽂혔다. 그래서 나를 그곳으로 내보냈잖아. 냉혹한 사람이라고 소문난 사람에게로... 하지만 이제 와서 왜... 내가 여전히 살아 있어서? 아니면 쿠도 키요카님이 원래는 아름답고 자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래서 빼앗으려 하는 거야?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은 입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했다.
"괜찮은 제안이잖아? 언니는 사이모리 가문과 코우지 씨까지 가지게 되는 걸. 언니가 오랫동안 바라던 일 아니야?"
내가 바라던 일은... 아주 조금 행복해지는 것뿐이었어. 아주 조금... 웃을 수 있는 일이 생길 수 있을까 하는... 그런데 이제 나리를 만나 그럴 수 있게 되었어.
"제가... 나리의... 쿠도 키요카 님의 약혼자예요. 절대... 양보 못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새어머니가 부채로 내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이날 이때까지 키워 준 은혜를 시집가자마자 원수로 갚다니! 정말 배은망덕 하구나!"
새어머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악에 받친 말들을 쏟아냈다.
"너 따위가 내 인생을 망치게 둘 것 같아!"
예전의 나였다면... 분명히 사과했을 것이다. 그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그것만을 바라며 살아왔다. 그게 편했으니까. 새어머니에게 어머니의 유품을 빼앗겼을 때도, 어린 시절 이곳에 갇혀 울부짖었을 때도, 나는 결국 포기했으므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텅 빈 삶일 뿐이었다. 유령처럼 사이모리가를 배회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나리에게 돌아가야 했다. 나는 두 발로 일어섰다.
"정말 끈질기구나!"
새어머니가 소리쳤다. 그 순간, 창고 위에 달린 창 밖으로 번쩍 하는 빛이 생겼다 사라졌다. 그리고 쿵 소리가 났다. 비가 오려는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연달아 터지는 듯 들리는 쿵쿵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잠시 후, 그 소리가 멎었다. 하지만 새어머니의 호통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어서 말해! 쿠도 가문과의 혼담을 무르겠다고!"
"싫습니다."
"어디서 눈을 똑바로 떠!"
새어머니가 나를 밀쳤다. 나는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이번에는 발길질이었다. 새어머니는 나를 짓밟아 터뜨려 버리겠다는 각오로 무자비한 발길질을 계속했다.
"이제 그만 주제 파악 좀 하라고!"
"절대 양보하지 않아요. 저를 믿어 주신 나리를 위해서!"
나는 외치고 또 외쳤다. 이번에는 카야가 손으로 내 목을 잡고 흔들었다.
"어서 말해, 혼담을 무르겠다고!"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정신이 까무룩 사라지는 것 같았고, 나는 눈물이 차올랐다. 언젠가 내 목숨이 꺼지는 순간이 오길 기다린 적이 있었다. 하루하루가 괴롭고, 슬프고, 감정을 죽이고 사는 것도 지쳐서 내 안식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리가 나에게 말해 주었다. '널 필요로 하는 사람은 바로 나인 걸.' 하고... 안식처가 있었다.
"당장 말해!"
카야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대로 암흑 속으로 빠지겠다고 느껴진 순간, 다시금 쾅, 하고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목을 조여오던 카야의 손 힘이 천천히 약해졌다.
"쿠도 님?"
카야가 뭔가를 보고 중얼거렸다. 천천히 눈을 떠보니, 나리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미요!"
나를 부르면서.
나리는 쓰러진 나를 품 안에 안았다. 이것은 죽기 직전에 보이는 환영일까?
"나리... 저 포기하지 않았어요."
"미요, 이제 괜찮아."
"저 같은 걸 위해서 여기까지 와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다. 이것은 실재였고, 나는 나리의 품에서 안전함을 느꼈다.
"아까부터 웬 소란이야?"
새어머니는 나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창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안 돼!"
새어머니는 어딘가로 달려가는 것 같았지만 알 길이 없었다. 나리는 나의 상처를 살폈다. 그에게 내 상처를 보이기 부끄러웠지만 저항할 수도 없었다. 나는 모든 기력이 빠져나갔다.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런 상처까지 입히며... 얻으려 한 게 뭐지?"
나리의 말에, 카야는 당당하게 맞섰다.
"저는 잘못한 거 없어요. 그저 실수를 바로잡으려 한 것뿐인걸요."
"실수?"
"언니는 견귀의 재능도 없고, 외모도 볼품없어서 하인으로도 못 써요. 그런 사람을 쿠도 가문에서 받아들이다니 실수가 아니면 뭐겠어요? 저희 부모님도 제가 최고라고 하셨는걸요. 언니와는 딴판이라고요! 어디를 보더라도..."
"닥쳐. 네 헛소리라면 더는 듣고 싶지 않다."
나리가 나를 안아 올렸다. 카야의 외침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대체 왜 몰라주시는 거죠? 너무 하세요!"
"내가 너 같은 오만한 여자를 선택하는 일은 천지가 뒤집혀도 없을 거다."
얼음처럼 차가운 나리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그 목소리가 카야를 얼려 버린 것일까. 더는 카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리의 품에 안겨 창고 밖을 나오니, 새어머니가 소리친 이유를 알았다. 사이모리가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날 사이모리가에서 겪었던 일에 대한 기억은 거기까지다. 나는 나리의 품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전처럼 벚나무 앞에 서 있었다. 꿈이 아닌 현실처럼 너무나 생생했다.
"정말 잘 컸구나, 미요."
"어머니..."
"이 어미로 인해 너를 고생시켜서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다 내가..."
"너 자신을 믿으렴. 네 안에 잠든 그 힘을."
"...?"
내 안의 힘? 그것이 무엇인가요?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래서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딜까?'
고개를 돌려봤다. 나리가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나리..."
내 작은 목소리에도 나리는 번쩍 눈을 떴다.
"미요!"
"나리..."
"그래, 나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온몸이 무거운 납덩이로 변한 것 같았다. 나리가 몸을 일으켜 주었다.
"정말 괜찮아?"
"네... 저기 나리... 이번에는 제가 부주의한 탓에..."
"네 탓이 아니야. 절대로, 무엇 하나도."
나리의 말이 가슴에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고맙습니다, 나리..."
"미요 님!"
유리에였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내 앞에 엎드렸다.
"의식을 찾으셨군요!"
유리에의 떠는 몸이 느껴졌다.
"유리에 씨, 그만 고개를 드세요."
"혹시 미요 님께 무슨 변고라도 생겼을까 제가 얼마나 애태웠는지..."
나리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다행이었다. 기꺼이 나를 위해 달려와준 나리와, 이렇게 내 걱정에 눈물짓는 유리에 씨가 있는 곳에 함께 할 수 있어서... 하지만 나는 몰랐다. 모두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고 믿었던 불행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