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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창고

드라마 '악귀' 속 태자귀

by 야키디 2023. 7. 25.

드라마 <악귀>는 악귀에 씌인 여자와 귀신을 볼 수 있는 남자가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다. 드라마의 초반 부, 악귀의 비밀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1958년, 붉은 댕기를 손에 쥔 한 무당이 소녀들을 둘러 보고, 얼마 뒤 창고에 갇혀 굶주린 소녀를 먹을 것으로 유인해 살해한다. 태자귀를 만들어낸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연구 노트' 속에 악귀는 '태자귀'라는 것이 보여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드라마 <악귀> 속에서 언급된 태자귀는 어떤 존재일까.   

 

 

 

1. 태자귀란?  

 

고성배의 <한국 요괴 도감>에 따르면, 태자귀는 세 살 미만의 어린아이 귀신으로, 휘파람 소리와 함께 나타나며 자연스레 승천하는 존재다. '탱자귀'등으로도 불리며, 무당에게 태자귀가 들리면 이를 '명도'라고 칭한다. 명도가 실리면 무당은 손짓, 발짓, 휘파람 등으로만 소통하며 가끔 울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비슷한 것으로는 '새타니'가 있으며 제주도 설화에 등장하는 어미에게 버림받은 아이가 변한 원귀다.

 

태자귀가 붙은 무당은 용하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온라인상에서는 태자귀를 만드는 괴상한 방법이 떠도는데, 아이를 굶어 죽인 후 아이의 혼을 특정 매개체에 담는 것이 그것이다. 

 

요괴 분류에 의하면, 귀물에 해당하고 전국 각지에서 출몰하며, 출몰 시기 또한 시대 불문이다. 특징으로는 길흉화복을 잘 맞추나 어린아이처럼 변덕이 심하다. 

 

2. 무당과 태자귀 

 

풍문에 의하면, 영검을 잃은 무당이 소위 말해 신빨을 되살리기 위해서 했던 방법의 하나로, 어린 아이를 태자귀로 만들어 모신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잡귀 혹은 악귀를 모시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무당은 보통 신을 모신다고 말하는데, 이때의 신은 엄밀히 말하면 귀신이다. 그러나 떠도는 귀신이 아니라, 죽어서 하늘에 올라 도를 닦아 다시 지상에 내려온 것으로, 자신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영매를 찾는다. 따라서 보통 무당이 모시는 신은 '조상신'이다. 무당의 조상중에서 죽어서 다시 지상의 인간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내려온 신(귀신)이 무당이 모시는 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신이 한 때 인간이었고, 아무리 도를 닦아 다시 지상에 내려왔어도 속성은 귀신이라, 자신을 잘 모시지 않거나, 무당이 허튼 짓을 할 경우 화가 나 무당을 떠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무당은 다시 신을 청배하기 위해 기도를 하는 등의 갖은 노력을 하지만 한 번 떠난 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무당의 생계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보통 무업은 뜨내기 손님들 보다도 그 무당을 통해 집안의 길흉화목을 점치고 비는 단골 손님들로 유지되는 것이다. 무당 또한 신이 떴다고 귀문까지 닫히지는 않았는지라, 허주(잡귀신)들이 들러붙어 사는 동안 내내 고통 스럽다.

 

따라서 어떻게든 다시 영검을 되살려야 하는데,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한 많은 귀신을 만들어내 모시는 것이다. 보통 한스럽게 죽은 자는 승천하지 못하고, 넋이 떠도는 귀신이 된다. 게다가 어린 아이는 순진하기 때문에 동자(아기 귀신)처럼 솔직하게 말을 해줄 거라는 믿음 또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댓가가 따르는 법이다. 무당 스스로 악인이 되어 만들어낸 귀신은 무당을 돕는 듯 하다가, 그를 망친다. 그래서 태자귀를 모신 무당은 몇 년에 한 번씩 또 다른 태자귀를 만들어낸다는 설이 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끝까지 무업을 해내는 무당은 없다. 천벌, 무당에게는 신벌 혹은 벌전을 맞게 된다. 절대로 신은 그러한 무당을 두고 보지는 않는다.   

 

3. 문헌 속 태자귀 

 

<성호사설> 제5권 '만물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태자귀는 소아귀로, 어린아이가 죽으면 혼백이 다른 사람에게 붙어 요사스러운 말을 한다. 인간의 길흉, 지방 사정 등을 물어보면 빠짐없이 일러준다. 태자귀의 이름은 진태자(晉太子) 신생(申生)의 이름에서 유래된 듯하다. 태자귀는 혼백이 의지할 곳이 없어 사방으로 떠돌다가 아우 누구, 아들 누구라고 이름을 부른다. 이에 대답하면 이름이 붙는 것이다. 

 

<용재총화> 3권에 등장하는 태자귀는 사람의 마음으르 가지고 논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님 장득운이라는 자가 점을 잘 쳐 명경수(점 치는 책)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태자귀가 붙은 무당에게 안효례가 물어 명경수를 찾으려 했고 무당은 그 위치를 상세히 알려준다. 하지만 실제로 가니 없었고 이를 태자귀에게 물으니 '네가 항상 거짓으로 사람을 속이니 나도 그래 보았다.'라고 했다. 

 

4. 드라마 <악귀> 속 태자귀 

 

드라마 <악귀>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김태리가 맡은 악귀에 씐 구산영, 오정세가 맡은 귀신을 볼 수 있는 민속학과 교수 염해상. 두 사람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힘을 합치며 드라마가 펼쳐진다. 드라마의 큰 줄기는 염해상의 어머니를 죽게 한 구산영에 씌인 악귀의 정체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그러나 과정에서, 진짜 악귀는 누구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어린아이를 귀신으로 만든 인간, 그 인간이 진정한 악귀가 아닐까? 하고 답한다. 

 

김은희 작가는 SBS에서 공개한 코멘터리 영상을 통해 "드라마에 나왔던 1958년 당시 기사는 실제 기사였다."고 밝힌다. 드라마에 나온 신문에는 '염매를 만든 비정한 무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며, 염매는 무당이 신력을 높이기 위해 아이를 굶겨 죽여서 귀신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드라마는 가장 약한 자의 희생(태자귀)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진장한 악귀인 인간의 실체를 밝혀 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주제 의식에 설화와 무속 신앙들이 더해져 더더욱 미스터리하고 오싹한 느낌을 주면서, 드라마의 몰입을 높인다. 

 

5. 태자귀의 한을 푸는 법 

 

불교에서는 태자귀를 천도하지는 않지만, 천도할 대상으로는 본다. 태자귀가 있는 집은 태자귀가 시기하므로, 그 집안에 태어난 자식들이 제대로 클 수 없기 없거니와, 무사히 크더라도 잘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불교에서는 지장보살의 원력으로 한을 풀고 성불시키는 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태자귀만을 천도하는 방식은 없다. 다만, 불교에서 태아령의 천도를 위한 지장보살을 태안지장(胎安址臧)이라고 부른다. 오른손에는 아미타불을 모신 석장을 짚고 왼손으로는 동자를 안고 있는 태안지장의 모습에서, 태자귀를 천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감지할 수 있다. 불교 설화에서는 태안지장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삼도천이 흐른다. 이 강가 모래밭에는 부모 자식의 인연이 두텁지 못해 어려서 죽은 갓난아이와 햇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간 핏덩이들이 모래밭에서 고사리 손을 모아 탑을 쌓고 있다고 한다. 부처님의 공덕을 빌어 삼도의 강을 건너려 고사리 손을 모아 돌 하나를 들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합장하고, 다시 하나의 돌을 들어 아버지를 생각하며 탑을 쌓는다. 그러나 하나의 탑이 완성되어 갈 때 쯤이면 저승의 도깨비들이 나타나 호통을 치며 쇠방망이로 탑을 부숴버린다. 애써 쌓아올린 탑이 무너져 내리면 어린 영혼들은 그만 모래밭에 쓰러져 서럽게 울다 지쳐서 잠들어 버린다. 그때 지장보살님이 눈물을 흘리며 나타나서 옷자락으로 어린 영혼을 감싸안으며, '오늘부터 나를 어머니라고 불러라.' 하면서 삼도천을 건네 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