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잘생김을 연기하는 배우라 불리던 베네딕트 컴버배치. 그 말에는 잘생기지 않았으나(오히려 뭔가 이상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지만) 그것을 멋진 남자로 보이게 하는 다른 매력이 있다는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눈빛, 표정, 목소리...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독특한 자신의 외모를 연기와 분위기로 업그레이드 시킨다.
지금까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필로그래피를 보면, 다양한 배역을 맡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출세작은 뭐니뭐니해도 BBC에서 제작한 <셜록> 시리즈 일 것이다. 21세기 셜록 홈즈로 완벽하게 변신한 그는 마냥 괴짜도 소시오패스도 아닌, 매력적인 천재상을 구현해 냈다.
그런 천재상 구현에 재능이 있어서일까. 유독 그는 과학자 캐릭터를 많이 맡았다. 그리고 과학자에 아주 잘 어울리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너드'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뭔가 한 분야에 몰입하는 역할이 꽤나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지적인, 진지한, 속을 알 수 없는, 그러한 눈빛이 잘 담겨 있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해 본다.
1. 호킹 (Hawking)
베네딕트 컴퍼배치를 세상에 알린 작품은 <셜록>이지만 그의 존재를 알린 작품은 <호킹>이다. 작품은 2004년 BBC에서 방영한 TV 영화이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에 대한 영화이다. 특히,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호킹 박사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은 '시간'에 대해 탐구하는 젊은 과학도의 열정과 '루게릭' 병에 맞서 자신을 일으켜 세우려는 한 인간의 의지를 담고 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호킹 역을 맡아 많은 호평을 받았고, 영국 아카메디 텔리비전 어워드에서 베스트 액터 부분에 올랐으며, 'Golden Nymph'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1963년 1월, 호킹의 스물 한 번째 생일 파티에서 시작된다. 호킹은 파티에 초대한 여자친구 제이과 함께 집 앞 잔디밭에 드러누워 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후, 제인은 일어서지만, 호킹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곧 병원으로 옮겨져 갖가지 검사를 받는다. 최종 진단은 근 위축증, 루게릭이다. 의사는 뇌의 운동 뉴런이 죽어가고 있어, 근육에게 운동 명령을 내리지 않아, 몸이 점점 마비 되어가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호흡이 약해지다가 멈춰질 거라고 말한다. 호킹은 묻는다. "뇌는요? 뇌 자체는 어떻게 되죠?" 의사는 말한다. "뇌는 그대로일 겁니다. 뇌는 손상되지 않아요." 이 말이 그나마 호킹에게는 희망이 된다.
하지만 의사는 호킹에게 2년의 시한부 판정을 내린다. 당시 호킹은 케임브리지 대학원 진학할 예정이었다. 호킹은 대학원에 진학해 물리학을 계속 공부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샤머 교수를 만나 빨리 끝낼 수 있는 쉬운 주제가 아닌, 독창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는 호킹을 병을 앓는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과학적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과학도로 대해준다.
그 결과, 그의 지치지 않는 뇌 속에서 '빅뱅 우주론'이 떠올랐고, 증명했다. 그리고 호킹의 병에 대해 알게 된 제인에게 청혼을 한 뒤 대답을 기다린다. 이때에 영화의 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거동이 불편한 호킹이 기숙사 담당자에게 '편의'를 봐달라고 요청한다. 담당자는 예외는 없다면서 호킹의 말을 자른다. 이때, 함께 있던 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은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어요. 병을 앓고 있다구요. 상태는 더 악화될 거예요. 출입이 쉬운 방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못하시겠다면,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각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테니까. 이 대학의 기숙사가 용기 있고, 똑똑하고, 위대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얼마나 하찮은 사람 대하듯 했는지. 이해하시겠어요? 이 사람은 제 남편이 될 사람이거든요!"
이때가 두 사람의 가장 로맨틱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는 스티븐 호킹의 일생 중 단 3년만을 담고 있다. 그러나 루게릭 병을 알게 되고, 물리학자의 길을 가리라 결심하는 그의 젊음이 그려진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루게릭 병 증세를 정말 리얼하게 연기해 낸다. 수도꼭지를 돌리는 양손, 호흡근 강화 훈련을 하는 모습, 걸음걸이, 표정, 안경과 지팡이를 집어드는 모습... 단순히 흉내내기가 아니라, 실제 그 병을 앓는 사람처럼 표현해낸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얼마나 탁월한 관찰력을 가진 배우인지 증명하는 장면들일 것이다.
2. 이미테이션 게임 (The Imitaion Game)
애플사의 로고가 왜 한 입 베어 문 사과일까? 그건, 스티브 잡스가 앨런 튜링을 존경했고, 앨런 튜링이 청산가리가 주사된 사과를 먹고 자살했기 때문이다....라는 썰이 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 과학자 앨런 튜링의 숨겨진 업적과 쓸쓸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영화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주인공 앨런 튜링을 맡아 연기했다. 하지만 초반에 논란이 좀 있었는데, 그의 외모가 실제 앨런 튜링과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왜 베네딕트 컴버배치였는지 알게 된다. 영화에서 그려내고 있는 앨런 튜링은 내면에 슬픔이 가득히 차 있는 사람이자, 한 사람(크리스토퍼)를 지독히도 그리워하는 매우 고독하고 고직식한데, 동성연애자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그 안으로는 태풍이 부는 사람인데, 그런 역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아니면 누가 할까?
영화는 2014년에 개봉했다. 개봉 후에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앨런 튜링의 싱그로율과는 별개로 역사적 오류와 왜곡이 너무 많다면서 지적이 있었다. 리차드 도킨스마저 영화에 대해 심각한 왜곡이 있다고 맨션을 남기기도 했다. 에니그마와 앨런 튜링이라는 소재로 뭔가 첩보 영화일 것처럼 홍보를 한 것도 문제가 되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다른 사람(앨런 튜링)'이 '보통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그것을 기계와 인간의 소통 과정과 연관시켜서 고독을 해소하는 드라마로 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선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감독도 앨런 튜링의 전기 영화는 결코 아니며, 철저한 고증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라고 영화 개봉전에 인터뷰한 부분이 있긴 하다.
어쨌든 천재이자 동성연애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외톨이었던 앨런 튜링이 팀을 이끄는 리더가 되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아군의 목숨까지도 저울질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바로 그가 만든 기계 크리스토퍼 때문이다. (크리스토퍼는 그가 학창 시절 사랑한 남학생 이름이기도 하다.) 크리스토퍼는 암호해독 기계이다. 이 기계를 통해서, 적국의 정보를 파악한다. 하지만 정보를 알아냈다는 것을 적국에서 알면 안 되기 때문에, 아군이 죽는 줄 알면서도 묵인할 수 밖에 없다. 캐릭터 뿐만 아니라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 알지만 할 수 없는,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인간... 극 중에서 앨런 튜링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기계인가, 인간인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내적으로 승화시킨 카리스마와 지적인 매력을 보고 싶다면, <이미테이션 게임>을 놓칠 수는 없다.
3. 커런트 워 (The Current War)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남학생들이 되고 싶은 꿈의 직업 1위가 과학자였다. '과학동화'니 과학상자를 들고 다니는 학생들도 제법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모두가 '에디슨'을 존경했다. 지금도 누군가 "아는 과학자 이름을 말해보시오." 라고 묻는다면, 아인슈타인과 함께 1,2위를 다투는 인물 에디슨. 그의 '전기' 영화 커런트 워를 소개한다.
영화 <커런트 워>를 한국말로 번역하면 '전류 전쟁'쯤 된다. 영화의 내용은 전기를 독점하기 위한 에디슨과 조지 웨스팅하우스의 경쟁을 담고 있다. 여담인데, 과거 에디슨과 테슬라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본 적이 있다. 그 연극에서는 테슬라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에디슨이 아주 못된 인간으로 그려졌다. 아무튼 그 연극 덕분으로 두 사람에 대해 궁금증이 일어, 조금 알아보았더니 에디슨이 진짜 순수한 과학자는 아니었다. 그 후로, 몇몇 TV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방영했고(서프라이즈?), 에디슨이라는 인물에 대한 환상이 많이 벗겨졌다. 그리고 나선 침대 광고로 잠깐 또 긍정적 이미지를 주곤 했지만 어쨌든...
그래서 일까,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에디슨'역을 맡는다고 했길래, 조금 놀랐다. 나는 당연히 테슬라를 맡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왠지 비열하게 나올 것 같은데... 진짜 비열했다.
1880년대 미국 뉴욕에서는 테슬라를 필두로한 웨스팅 하우스와 에디슨 사이에 전기 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일생 일대의 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의 내용은 직류와 교류 중 어떤 것을 전기 시스템의 표준으로 삼느냐는 것이다. 에디슨은 직류를, 웨인 코스팅은 '교류'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테슬라는 교류를 이용하면 직류 전동기의 스파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축음기, 전화송신기, 직류전기를 발명하고 전자공업 발달의 원동력이 된 '에디슨 효과'를 발견해 부를 축적하고 있던 에디슨에게 교류전기는 자신의 명성과 부를 앗아갈 수도 있는 위협적인 교류시스템이었다.
테슬라는 '테슬라코일'이라는 세계 최초의 교류 전기 모터의 특허를 획득했다. 그의 교류 시스템은 조지 웨스팅 하우스가 투자로 한층 발전했다. 이 무렵 에디슨은 전기 산업을 장악하고 있었다. 반면 웨스팅 하우스는 기차에 사용되는 공기 브레이크를 발명해 백만장자가 된 후 테슬라에게 교류 변압기의 특허를 사들여 전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발명가이자 타고난 사업가였던 에디슨에게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을 앞세운 웨스팅 하우스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영화는 에디슨과 웨스팅 하우스(테슬라)와의 싸움을 은유와 대비를 통해 보여준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웨스팅 하우스의 교류가 만국바람회의 전구에 불을 켤 때, 교차적으로 교류 전기를 이용한 최초의 전기 의자(사형 집행)을 보여주며 교류의 장점과 이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날 때 즈음 각 인물들의 이후 인생이 짧게 나오는데, 전류 전쟁에서 승리한 건 웨스팅 하우스였지만 역사의 승리는 명성이 있던 에디슨이었다든지, 전류에서 영화로 사업을 돌린 에디슨이 전류 전쟁 직후 웨스팅 하우스와 테슬라와 함께 미래를 꿈꾸었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영사기로 영화를 찍은 후 상연하며 관중석에 앉아 회심의 미소를 보내는 장면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꽤나 만듦새가 훌륭하다고는 볼 수 없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 하나는 전류사를 두 시간 정도의 시간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비열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죄>때의 성범죄자 역할 보다는 덜하지만, 확실히 제대로 보여준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색다른 매력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