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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창고

유배 서사, 그리고 영화 <자산어보>

by 야키디 2023. 8. 1.

유배는 한 개인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분리하는 일종의 사회적 사형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유배가 가혹한 형벌이 될 수 있는 것은 특정 지역에서의 격리와 구금을 통해 물리적·사회적 단절을 할 수 있는 시대에서만 가능하다. 편리한 교통과 소셜 미디어(Social Media) 사용이 자유로운 이 시대에는 집행의 이유가 소실된다. 따라서 현재 유배에 관련하여 접할 수 있는 것은 유배 가사와 같은 문학작품이라거나, 유배된 역사적 인물과 공간을 관광 상품화 하는 경우라거나,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 유배의 과정을 재현한 콘텐츠가 전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콘텐츠의 본질은 유배의 상황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왜 필요한 것일까? 

 

유배의 본질은 ‘살아내기’라고 할 수 있다. 유배에 관련한 이야기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서사다. 따라서 유배 서사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 삶의 한 유형을 이해하는 것과 일치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유배에 관련한 역사서사물 특히 영상 매체에서의 내용이 몇 가지 장면으로 고정되어 있거나 단순화되어 있기 때문에 유배라는 상황에 처한 인간을 제대로 성찰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1년 개봉한 영화 <자산어보>는 기존의 유배 관련한 콘텐츠와는 다른 속성을 가진다. 유배 서사를 구성하는 요소인 ‘유배지’와 ‘유배인’의 특징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는 도입부에 ‘이 영화는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의 서문을 바탕으로 만든 창작물입니다’라고 밝힌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이 역사적 사실에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해 만든 팩션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자산어보(玆山魚譜)』에 등장하는 ‘장창대(張昌大)’와의 교류에 국한되어 있고, 정약전의 유배 과정에서는 역사적 상상력 보다는 역사적 진실에 대한 비중이 더 높은 스토리텔링을 진행하고 있다. 

 

유배 서사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던져진 한 사람이 어떠한 방식으로 다시 삶을 살아내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영화 <자산어보>에서는 그 동안 영상 매체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은 ‘유배’와 ‘정약전’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유배 서사의 일반적 특징을 정리하고, 정약전의 유배 서사를 재확인하는 방식을 통해 고통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살펴본다면 보편적인 서사로서의 ‘유배 서사’와 소재로서의 ‘유배’가 가진 의미와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유배 서사의 구성 요소 

 

유배는 죄명이 정해지는 득죄(得罪), 유배지로 향하는 여정(旅程), 거주지가 정해지는 배소(配所), 유배 살이의 과정을 거치며, 왕의 명으로 해배(解配) 되거나 죽음을 맞이해야 끝이 난다. 조선시대에 유배는 사형 다음으로 가장 큰 형벌이었다. 유배가 가혹한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배 지역이 원악지(遠惡地)인 곳이 많았다. 함경도의 삼수갑산 오지와 조선 3대 유배 섬인 제주도, 거제도, 흑산도는 물론이고 추자도 등의 남도 섬들이 바로 죄인을 유배 보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들 지역은 생활 여건 자체가 좋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풍토병을 얻기도 쉬워 살아내는 것이 힘겨웠다.

둘째, 유배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따라서 곧 해배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죽을 때까지 갇혀 있을 수도 있다는 절망이 교차되었고, 당쟁에 휩쓸려 유배가 되었을 시 언제고 사약을 받아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감 또한 존재했다. 따라서 유배인들은 이 모순되는 감정들을 정리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보자면 유배 서사의 구성 요소는 크게 유배지와 유배인으로 나눌 수 있다. 유배라는 형벌 자체가 낯선 곳에서의 삶 살기를 통해 죄인에게 벌을 주는 방식이므로, 유배지와 유배인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은 유배 서사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1-1. 유배지 

 

유배지에 당도한 유배인의 거처는 보통 관아에서 강제로 지정하였고, 그 집의 주인을 보수주인(保守主人)이라고 불렀다. 보수주인은 죄인을 보살피는 역할 뿐만 아니라 감시하는 역할을 겸하였으나, 관에서 따로 혜택을 받지는 않았다. 게다가 유배인의 식량을 고을 백성들에게서 거두는 경우가 있다 보니 지역민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유배인이 해배되면 대개 중앙 관리로 복귀하기 때문에 토호 세력들은 유배인을 서로 모시려고 경쟁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일부 토호 세력들은 자신의 서녀를 배수첩(配修妾)으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유배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러한 관심은 점차로 멀어질 수밖에 없으며, 정약전(丁若銓)처럼 절해고도(絶海孤島)에 유배된 자들은 당장에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배인은 보수주인에게 머물 곳을 의탁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철저히 개인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유배인에게는 큰 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맺어 놓은 사회적 관계의 단절, 대자연의 낯선 공간에 홀로 떨어졌다는 두려움이 더 큰 벌로 여겨졌다. 따라서 유배인은 고독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하여 배수첩을 얻어 자식을 낳고 지역 사회에 동화되어 살아가거나 저술 활동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심란한 내면을 극복하고자 했다. 

 

유배지가 유배 서사에서 특별한 이유는 유배인에게 다양한 심리적 변화를 촉구하기 때문이다. 유배지는 기본적으로 산과 강 그리고 바다가 벽이 되어 유배인을 특정 지역 안에 완전히 가둘 수 있는 자연 풍광이 감옥과 같은 기능을 한다. 따라서 유배 공간 자체가 갖고 있는 실체적 위용이 유배인을 위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유배지는 끊임없이 유배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처지를 환기시킨다. 정적(政敵)에게 몰려 억울하게 유배에 처한 사람도 유배지 안에서는 그저 죄인일 뿐이다. 오로지 그 공간을 떠나야만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난다.

 

그러므로 유배인에게 있어 유배지는 오래 머물 수는 있으나, 영원히 머물 수는 없는 공간이며,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장소이자 자신의 몸을 의탁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다. 이런 양가적인 공간에서 유배인은 죄인이자 동시에 생활인으로서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1-2. 유배인 

 

유배인은 득죄, 여정, 배소, 유배 살이, 해배의 과정을 거칠 때 까지 다양한 감정적 변화를 겪는다. 유배는 사형 다음의 중형이었지만 주로 정치범을 대상으로 하였고, 당파 간 갈등이 첨예했던 조선 붕당 정치 시기에는 정적 숙청의 방편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유배인은 죄의식이 미약했다. 이런 상태에서 배소에 도착하게 되면, 도착한 일자를 기재한 도배장(到配狀)을 작성하면서 자신의 죄명을 재차 확인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이때,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게 되면서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배소가 되고, 본격적으로 유배 살이에 접어들게 되면,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억울함 감정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자신을 유배 보냈던 임금에 대한 은혜를 되새기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유배가 중형이기는 해도 사형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지 사사(賜死) 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기반으로 한 감정이었다. 

 

따라서 유배인은 자신의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임자도(荏子島)에 유배된 조희룡(趙熙龍)은 유배 공간을 수동적인 유폐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해 내는 심미적인 장소로 변용시키려 했으며, 고독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는 글쓰기 방식을 시도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현지에 적응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지역민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했다.

 

특히 정약전의 경우 지역민과의 사이가 매우 돈독했다. 일례로 인근 섬에 살던 주민이 찾아와 서슴없이 작시(作詩)하기를 청했으며, 우이도로 배소를 옮기려고 하자 사람들이 만류하여 밤배를 타고 빠져나갔지만 바다 가운데까지 그를 쫓아와 붙잡히기도 했다. 정약전의 대표적인 저서 『자산어보』, 『송정사의(松政私議)』,『표해시말(漂海始末)』은 지역민과의 교류를 통해 쓰여 졌다. 이렇듯 유배인과 지역민의 교류는 한양과 지방간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던 시대에 지방 학문과 문화 수준을 한 차원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유배 서사에서 유배인은 가지고 있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죄인이자 생활인으로서 다시 삶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유배 서사가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이유는 유배인의 행동을 통해 인간 삶의 한 부분을 매우 면밀하게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득죄’를 기반으로 하는 유배 서사를 긍정적인 것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 극복 의지를 지닌 유배인을 통해 유배 서사의 긍정적인 면모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 영화 <자산어보>의 유배 서사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유배 과정 전체와 또 다른 유배인 정약용(丁若鏞)의 유배지에서의 삶,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창대와의 유대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에서 정약용과 창대는 정약전의 유배 서사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정약용은 유배의 진행과정 중 득죄와 여정의 과정에서 동반한 인물이며, 창대는 영화의 대부분을 채우는 유배 살이의 과정에서 동참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영화 <자산어보>의 유배 서사를 파악하고자 한다. 

 

2-1. 유배지, 흑산 혹은 자산 

 

자산어보』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자산(玆山)이란 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으로 유배되었는데, ‘흑산’이라는 이름이 컴컴하여 두려우니 가족들이 편지에서 번번이 ‘자산’이라 하였다. ‘자(玆)’ 역시 검다는 말이다. 

 

산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는 흑산도는 고려 중기, 송나라 사신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언급될 만큼 오래된 유배지이다. 또한, 영조 14년(1738) 우의정 송인명이 흑산도는 함부로 유배 보낼 곳이 아니니, 죄인을 다른 곳으로 유배 보내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절도(絶島)였다. 뱃길이 험해 의금부관원들조차 보통 유배인을 흑산도 근처 우이도에 두고 가기도 했다. 당시 우이도는 소흑산도로 불렸기 때문에 유배지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곳으로 내쳐진 정약전이 같은 죄목으로 함께 유배길에 오른 정약용과 율정점에서 끝내 헤어질 때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 간다. 

 

약용: 형님은 웃으시는군요. 

약전: 섬에 들어간다 생각하니, 두려움보다 설렘이 앞서는구나. 

 

두 사람의 대화 위로 정약용의 시 ‘율정점의 이별(栗亭別)’이 흐르고 두 사람은 기약 없는 유배지로 향한다. 

 

약용: 흑산도 머나먼 곳 바다와 하늘뿐인데 

         형님께서 어찌 그곳으로 가시겠소. 

 

신유박해로 인해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된다. 영화에서는 원래 정약용을 흑산도로 보내려 했으나, ‘더 위험한 인물’로 판단된 정약전이 흑산도로 가게 된다. 따라서 영화는 왜 ‘정약전이 위험한 인물인가?’라는 질문을 초반에 던지고 『자산어보』를 집필하기 위해 창대라는 청년과 교류하면서 정약전이 갖고 있는 사상을 하나씩 펼쳐 놓으며 답을 암시한다. 영화의 중후반부에 창대와의 대화 내용을 살펴보자. 

 

창대: 선상님, 궁금한 것이 있는디요. 선상님은 왜 다른 책은 안 쓰십니까요? 

         강진 선생님은 실사구시 뿐만 아니라 중용에 대한 책도 쓰는데... 

약전: 그것은 나와 내 아우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창대: 어찌 다른데요? 

약전: 목민심서 초고에서 필사를 해 놓은 것이 있는데... 이 구절 뜻을 풀어 보아라. 

 

…(중략)… 

 

약전: 윤음(綸音)은 임금의 목소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 윤음의 윤자는 낚시 줄을 뜻하기도 하는데 물고기를 잡는 니가 써도 되는 글자를 임금은 쓰고 너는 왜 못 쓰느냐.

        내가 바라는 것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적자도 서자도 없고, 주인도 노비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다. 

 

…(중략)… 

 

약전: 서학이든, 성리학이든 좋은 건 다 갖다 써야지. 나는 성리학으로 천주학을 받아들였는데,

         이 나라는 나 하나도 못 받아들였다. 

         이 나라의 성리학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이 나라의 주인이 성리학이냐 백성이냐. 

 

성리학이 뿌리 내린 조선이라는 사회는 정약전이라는 관료를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성리학을 공부하여 ‘목민심서’의 길을 가고자 하는 창대 역시 정약전은 두려운 존재다. 다만 오로지 유배지인 ‘흑산’만이 정약전을 품어준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관리가 된 정약전에게 정조가 당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조: 벼슬하는 관료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복이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버티는 것이야. 

        사방에서 칼이 들어오고 오물을 뒤집어써도 버텨내는 것이다. 버티거라. 

 

이 말은 추후에 유배길에서 정약전이 정약용에게 전하는 말과도 연결된다. 

 

약전: 욕되게 생각하지 마시게. 죽어 욕된 것을 만회할 길은 없지만, 살아 욕된 것은 살아서 만회 할 길이 있네.

         버틸 때까지 버텨 보세. 

 

그러나 오히려 유배지 흑산도에서의 삶은 버틴다기보다는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듯 생기가 넘친다. 그것은 성질을 알 수 없는 바다라는 대상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과 그것이 품고 있는 거대한 생명들이 주는 경이(驚異)를 매일 같이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배지의 공간에서 생명력을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정약전은 『자산어보』 집필을 결심한다.

 

실제로 정약전에게 흑산도는 자신을 정화하고, 받아들여 주는 공간으로 인식됐다. 정약용의 『여유당집(與猶堂集)』중 「잡설(雜說)」에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생활을 정리하여 보낸 글이 실려 있다. 그는 흑산도를 ‘수(水)의 성질을 가져 매끄럽고, 가볍다’고 했으며, ‘맑은 바람이 지나가고 밝은 기운이 펼쳐지며 추위와 더위를 모두 덜어내기에 넉넉하여 독한 것이 쌓이지 않는 곳’이라고 하면서 세상의 교만과 사치, 음난과 방일, 절도와 같은 갖가지 악한 습관들이 더럽히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한편, 영화는 정약전의 유배 서사를 구성하면서도 정약전에게 영향을 받은 창대가 흑산도 밖으로 나가 목민관(牧民官)이 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따라서 후반부로 갈수록 정약전의 안정적인 심리 상태와는 별개로 창대는 불완전한 심리 상태가 되는데, 그 이유는 흑산도 내에서도 경험했던 ‘군포(軍布)’ 문제를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주 목민관 밑에서 일하게 된 창대는 아전들이 태어난 지 사흘밖에 안 된 아이에게까지 군포를 내라고 하는 상황에 분개한 아버지가 자신의 성기를 잘라버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장면은 정약용의 시 ‘애절양(哀絶陽)’을 재구성한 것으로써, 군역에 대한 폐단을 처절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 속 정약전은 창대를 기다리며 홀로 『자산어보』 집필에 몰두한다.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가는 상황이지만, 고요한 심리상태를 유지한다. 이때 언급되는 ‘갑오징어’에 대한 내용은 흑산 밖에서 부조리한 상황에 처해 찢기고 상처 난 창대를 다시 흑산으로 돌아오게 하는 주문처럼 들린다. 

 

약전: 갑오징어는 등에 뼈가 있고 살이 매우 무르고 연하다. 속에 주머니가 있어 먹물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먹물에 취하여 글을 쓰면 색이 매우 윤기가 있다. 그러나 오래되면 벗겨져서 흔적이 없어진다. 

        바닷물에 넣으면 먹의 흔적이 다시 살아난다고 한다. 갑오징어의 뼈는 곧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 살이 나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관료 생활을 경험하고 돌아온 창대는 정약전이 완성한 『자산어보』와 그가 남긴 편지를 마주한다. 

 

약전: 그리하여 네 덕분에 음험하고 죽은 색, 흑산에서 그윽하고 살아있는 검은 색, 자산을 발견하게 되었다. 

         창대야,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 않는 자산같은 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 

 

갑오징어로 치환할 수 있는 흑산도는 생명력과 회복력이 가능한 공간으로 표현된다. 또한, 흑백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총 세 장면에서 색이 입혀지는데, 그것은 흑산도의 밤하늘, 흑산도에서 발견된 파랑새, 그리고 흑산도의 전경이다. 이러한 부분은 흑산도를 재생의 공간으로 느끼게 하는 메타포로 작용하여 유배지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영상 콘텐츠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한다. 

 

2-2. 유배인, 정약전의 적응기 

 

유배인은 유배지에 도착함과 동시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게 된다. 영화 속 정약전 또한 ‘서학쟁이’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글을 배울 수 없다고 말하는 창대로 인해, 상처를 입는다. 그날 밤, 술에 취한 정약전이 바다에 나가 달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비애의 감정에 젖는다. 그리고서는 ‘무섭다... 집에 가자...’ 라고 중얼거리다가 바다에 빠지고, 그것을 본 창대가 정약전을 구한다.

 

이후 앓아 누운 정약전을 위해 창대가 문어와 전복을 잡아오고, 그것을 삶아 먹은 정약전은 몸을 회복한다. 이 에피소드는 창대와의 본격적인 인연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그가 흑산도의 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작용한다. 이렇듯 영화는 유배지에 대한 정약전의 긍정적인 관심을 극 초반에 배치함으로써 유배인이 가질 수 있는 비애적 감정을 축소하고 유배지에서 적응해 가는 정약전의 서사를 전면적으로 다룬다. 

 

이 부분을 영화는 정약전이 지역민의 삶에 관심을 갖고 저술 활동을 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섬을 둘려보던 정약전은 보수주인 가거댁이 어린 소나무를 베어 내면서 세금 문제를 토로하자 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송정사의』를 써내려가고, 1801년 12월 표류를 시작하여 1805년 1월이 되어서야 고향에 다시 돌아온 문순득의 구술 자료를 채록한 『표해시말』을 집필한다. 영화에서는 이 책을 집필하는 이유를 정약전과 창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낸다. 

 

창대: 강진 선생님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그런 점잖은 책만 쓰시는디,

          선상님은 어쩌자고 이런 쓸데없는 것만 쓰실려고 하는 지 참... 

약전: 야, 이 놈아! 섬나라 왜놈들은 서양배가 들어왔을 때, 캐묻고 배워서 조총을 만들어 임진왜란 때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조선은 박연이라는 서양인이 표류해 왔을 때 감옥에 처넣어서 묶어 두었다가

         귀양이나 보냈지 도대체 뭘 물어봤느냐? 

 

정약전의 이러한 태도는 그가 『자산어보』를 집필하고자 하는 목적과도 연결된다. 영화에서는 정약용에게 보내는 편지에 집필 의도를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낸다. 

 

약전: 이제부턴 물고기 연구에도 착수하여 훗날 어류도감을 내볼 생각이네.

          마침 섬에서 물고기에 매우 해박한 젊은이를 만났네. (중략) 

         내가 이제까지 성리학, 노자, 장자, 서학 가리지 않고 공부한 것은 한 마디로 사람이 갈 길을 알고자 했던 것인데,

         창대 이놈이 물고기에 대해 아는 것만큼도 알아낸 게 없지 않은가?

         하여, 이제부턴 애매하고 끝모를 사람 공부 대신 자명하고 명징한 사물 공부에 눈을 돌리기로 했네. 

 

또한, 집필 과정에서 창대에게 끊임없이 묻는 과정이 나오는데, 귀찮아하는 창대에게 정약전은 다음과 같이 일침한다. 

 

약전: 세세하게 기록해야, 진짜 기록이 되는 것이다. 

창대: 듣고 본께 그렇네요. 도미가 해파리를 먹는 건 사람들이 잘 모를 것인게. 

 

…(중략)…

 

약전: 해파리가 많아지면 도미도 많이 오느냐? 

창대: 그건 지도 잘... 

약전: 해파리는 언제 많이 나느냐? 

창대: 여름이요 

약전: 더울 때 많이 난다... 허면, 수온이 낮아지면 해파리가 줄어드느냐? 

창대: 겁나 질문이 많으시네요이. 선상님처럼 질문 많으신 양반 처음 봅니다. 

약전: 질문이 공부야! 외울 줄 밖에 모르는 공부가 이 나라를 망쳤어! 

 

세상을 대하는 약전의 태도는 흑산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목민심서의 길을 가고자 하는 창대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영화 속 정약전의 유배 서사에서 지역민과의 교류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자산어보』를 집필하기 위해 창대와 어울리는 장면이다. 역사 속의 창대는 『자산어보』 속에서 총 아홉 번 등장한다. 따라서 창대라는 인물은 집필 과정의 실질적인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승율구(僧栗毬)에 대해 말하는 창대의 말 속에 ‘사람들이 이것이 변하여 새가 된다고 하였으니 민간에서 말하는 율구조가 바로 이것이다.’ 라고 사람들의 말을 간접 인용한 부분이나, 해돈어(海豚魚)를 설명할 때에 ‘흑산도에 가장 많은데 사람들이 잡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와 같은 부분, 풍엽어(楓葉魚)를 설명할 때, ‘바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비를 점친다. 어디에 사용하는 지는 듣지 못하였다.’ 와 같은 부분은 『자산어보』 집필 과정에 창대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지역민의 경험과 전언이 더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 중반기를 넘어가면, 정약전은 흑산도 생활에 적응하여 안정기에 접어든 모습을 보인다. 주민들의 권유에 서당을 열기도 하고, 창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하며, 가거댁과 살림을 합쳐, 아이를 낳고, 지역 사회와 동화된 생활을 진행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정약전은 우이도에서 『자산어보』집필을 마무리하면서 나주로 떠난 창대를 기다린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자산어보』는 우이도로 이배되기 전 완성된 상태였다. 이러한 부분은 영화의 서사를 보다 극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자산어보』에 나오는 생물 중 ‘갑오징어’, ‘고둥껍질’, ‘파랑새’의 내용을 집필하는 정약전의 모습과 나주에서의 창대의 상황을 비교하며, 창대가 “배운대로 못 살믄, 생긴대로 살아야지라.”라고 토로하는 부분까지를 클라이맥스로 삼는다. 그 이후, 정약전은 『자산어보』집필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이하며, 우이도에 들른 창대는  그가 남긴 편지 내용을 통해 ‘자산의 무명천’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스승의 뜻을 깨닫는다. 

 

오늘날 유배 서사를 정립하는 목적 중 하나는 유배의 상황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기운을 상쇄하고, 회복을 도모하는 유배인의 모습을 통해 유배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도출하기 위해서다. 영화 <자산어보>는 유배지 흑산도에 대한 정약전의 긍정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고통과 분노의 과정을 생략하고 현실 극복 의지 과정을 상세하게 담아낸다. 또한, 이러한 유배인의 삶에서 영향을 받은 지역민의 변화를 통해 우리가 왜, 유배인의 삶을 이 시대에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고, 사람을 통해 상처가 회복될 수 있다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확신할 수 없는 믿음을 ‘유배’라는 구체적인 상황과 인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와카디의 정리 

 

유배 서사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유배 서사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던져진 한 인간이 다시 삶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유배 서사를 파악함으로써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다. 

 

유배 서사를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유배지와 유배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배지가 유배 서사에서 특별한 이유는 유배 공간 자체가 유배인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며, 유배인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유배지는 죄인이 몸을 의탁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다. 이러한 양가적인 공간에서 유배인은 죄인이자 동시에 생활인으로서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따라서 유배인은 내면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지역민과의 교류를 통해 현지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영화 <자산어보>에서는 유배 서사가 지니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담아내고 있다. 첫째, 유배지 흑산도를 치유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성리학이 지배이데올로기인 조선사회에서는 정약전을 받아들이지 못해, 흑산도로 유배 보낸다. 하지만 흑산은 단지 천혜의 감옥이 아니라, 삶을 회복시키는 공간으로서 정약전을 품어준다. 둘째, 지역민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정약전의 적극적인 행동이다. 영화는 유배지에 대한 정약전의 긍정적인 관심을 극 초반에 배치함으로써 유배인이 가질 수 있는 비애와 분노의 감정을 축소하고, 유배지에서 적응해 가는 정약전의 서사를 전면적으로 다룬다. 따라서 영화 중반부로 넘어가면,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생활에 적응하여 안정기에 접어든 모습을 보인다. 창대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가거댁과 가정을 이루기도 하면서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동화되어간다. 

 

영화 <자산어보>는 그 동안 영상 매체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유배지와 유배인의 삶을 본격적으로 반영한 작품이다. ‘유배’라는 상황은 ‘죄’를 기반으로 하기에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영화는 유배지 흑산의 생명력을 통해 삶의 의지를 되새기게 된 유배인 정약전의 서사를 전면적으로 다루면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이 삶을 인식하고 고통을 극복해 가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따라서 유배 서사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해 ‘치유’의 공간으로서의 유배지, 성찰의 자세로서의 ‘유배인’이라는 서사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그 동안 정체되어 있었던 ‘유배’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지금 우리에게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서사’라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