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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뮤지컬 창고

뮤지컬 "곤 투모로우" 시즌 3 (2023.08.10~2023.10.22)

by 야키디 2023. 8. 31.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2016년 초연하여, 2021년 재연, 2023년에 삼연을 한 한국 창작 뮤지컬이다. 오태석의 '도라지'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오태석은 '도라지'를 비롯하여, '천년의 수인', '잃어버린 강',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아'처럼 역사극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는데, 그의 역사극을 사실과 허구를 양 축으로 놓고 본다면, '도라지'는 사실의 축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다.

 

그러나 뮤지컬로 각색된 작품에서는 '도라지'에서 조연이었던 김옥균을 주인공을 내세운다. 작품을 각색하고 연출한 이지나는 작품의 장르를 '역사 누아르'로 정의하고,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작품 안에서 시대적 고증을 최대한 덜어내어 민족주의적 뮤지컬에서 벗어나려 한다'면서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는 컨템퍼러리 형식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다.  

 

연출가의 결심은, 재연 그리고 삼연에 이르러서도 계속된다. 초연과 재연의 설정이 약간 달라지고, 삼연의 대본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사실에 충실한 역사극에서 벗어나 조금 더 현대적인 감각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1. 줄거리 

 

1884년 조선. 밖으로는 서구 열강과 청, 일본의 이권쟁탈이 가속화되고, 안으로는 혼란스러운 정세를 틈타 간신들이 활개 치던 시기. 고종은 젊은 개화파 지식인 김옥균에게 개혁의 의지를 위탁하여 혁명을 도모한다. 하지만 청국의 개입과 일본의 배신으로 갑신정변은 3일 만에 막을 내리고, 김옥균은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망명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아주 빠르게 스케치하듯 진행된다. '갑신정변'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김옥균이라는 자를 초반에 몰락하게 만드는 것으로써 기능한다. 따라서 혁명의 실패 과정은 작품의 메인 갈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자가 실패했다. 그런 자가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가? 아니면 왜 끝끝내 주저앉게 되는가? 그것을 따라가야 하는 뮤지컬이다.

 

한편, 뮤지컬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한정훈은 족보를 팔아 일본으로 간 뒤, 그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버티다 불란서로 넘어간다. 불런서 외인부대에서 활약한 공로로 시민권을 얻게 된다. 마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유진 초이처럼. 그러나 고종의 부름에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고, 불런서 최초의 유학생 홍종우의 이름으로, 김옥균에게 접근, 암살할 것을 명 받는다.

 

1막은 혁명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도망친 김옥균의 절망, 그리고 한정훈이 홍종우의 이름으로 김옥균을 찾아가 암살의 기회를 엿보면서 끝이 난다. 2막은 1막에서 쌓아두었던 것을 빠르게 해결하면서 조금 더 박진감 있게 진행된다. 2막 초반에 김옥균을 암살한 한정훈이 그의 뜻을 이어, 혁명을 꿈꾸지만 사망한다.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언제쯤 도래하는가... 먹먹한 느낌을 남기면서, 뮤지컬은 막을 내린다. 

 

 

2. 캐릭터 

 

뮤지컬에서 김옥균의 캐릭터는 혁명을 꿈꾸는 자이고, 고종의 신임 어쩌면 애정을 받는 인물로 그려진다. 뭔가 대단한 인물처럼 그려지는데, 그가 꿈꾸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잘 파악은 안 된다. 이익에 따라 나라를 팔아먹는 자들을 싹 처벌하고, 청렴결백한 자들로 관료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꿈이었나? 그것도 그려지지는 않는다. 다만, 관객이 알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년이라는 캐릭터라는 것이다. 어쩌면 조금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어차피 이 뮤지컬은 김옥균의 삶을 위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 덕후라면, 김옥균을 잘 알고 있다면 거슬리는 부분은 있다. 

 

먼저, 고종과 김옥균의 관계. 뮤지컬에서는 고종이 김옥균을 엄청 신뢰하고, 뭔가 애정이 있는 것처럼 그려냈는데, 역사적 사실들을 종합하여 볼 때, 고종은 김옥균을 '괘씸' 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일으켰을 때는, 고종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진행한 단독 행동이었으며, 고종이 아끼던 자들을 많이 죽였다. 따라서 후에, 고종이 김옥균 시체를 여러 부분으로 절단하여 조선 팔도에 뿌린 일은 그가 얼마나 김옥균을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고종이 김옥균의 혁명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가 그런 일을 하도록 김옥균이라는 자를 발탁한 것처럼 그려낸다. 

 

따라서 고종의 캐릭터는 뮤지컬 상에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김옥균과 마찬가지로 혁명을 꿈꿨으나, 여러 번의 실패로 무너진, 어떻게 보면 늘 어딘가 나사 빠진 사람처럼 구는 사람처럼 그린다. 술이나 약에 취했거나, 흔들흔들 거리는 자로 말이다. 물론 뮤지컬 상에서는 실제로 술을 마시거나 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 고종의 캐릭터 또한 영화 <마지막 황제> 이후로 그려진 몰락한 나라의 왕 이미지를 그대로 따라간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해야 하는 뮤지컬 서사에서 관객은 캐릭터의 전사가 저절로 그려져 납득되어 넘어가게 된다.  

 

이 뮤지컬에서 그나마 조금 입체적인 캐릭터라면 한정훈이라고 할 수 있다. 족보를 버리고, 나라를 떠나, 외인부대에 들어간다. 그런데, 고종의 부름으로 다시 돌아와 김옥균을 죽이기 위해 그에게 접근한다. 고종의 명을 수락한 이유는?  작품에서는 그는 "한 자리 얻고 싶어서."였다. 한때 한정훈은 김옥균을 흠모했던 자로 등장한다. 김옥균은 당시 조선과 일본의 셀럽이었다. 당대의 천재였고, 글을 잘 썼기 때문에 어디 가나 환영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김옥균과 같은 뜨거운 피를 가진 한정훈이 고종의 명을 수락하고 그를 암살하려고 접근한다는 게 퍼뜩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홍종우'라는 실존 인물이 더 김옥균을 죽이기 위해 적합한 인물이다. 김옥균은 급진 개혁파이고, 홍종우는 온건 개혁파였다. 나라를 개혁하려는 목표와 의지가 달랐다. 만들어진 캐릭터 한정훈이 고종의 명을 받아 든 이유를 조금 더 납득 가능하게 만들어 줬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어쨌든 이 뮤지컬에서 한정훈은 제2의 김옥균처럼 그려진다. 

 

그렇다면 이 뮤지컬의 최고 빌런으로 등장하는 이완은 어떤가? 그의 이름만을 들었을 때는 '이완용'을 떠올리게 한다. 창작진들은 분명 그것을 의도했을 것이다. 매국노의 대명사가 이완용이니까. 그러나 굳이 이름을 바꾼 것은 한 캐릭터에 그 시대의 매국노를, 권력지향적 인물을 모두 통합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완이 뮤지컬 안에서 진행하는 일들은 픽션이기도 하고, 사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설정은 극 전개상 이건 누가 벌인 일인데, 저건 누가 벌인 일인데... 하면서 팩트 체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고, 상징성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캐릭터 또한 전형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다지 신박하지 않은 스토리, 전형적인 캐릭터... 그런데 무엇이 이 뮤지컬을 삼연까지 하게 만들었을까? 관객은 어떻게 이 뮤지컬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을까? 그것은 뮤지컬의 또 하나의 힘, 음악 때문이면 다른 하나는 무대 연출이다. 

 

3. 음악과 연출

 

요즘 많은 국내 창작 뮤지컬이 그렇듯이 무대에는 끊임없이 음악이 흐르고, 영상이 활용된다. 따라서 눈과 귀가 쉴 틈이 없다. 따라서 어떤 뮤지컬을 보고 나서는 몸이 참 많이 피곤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전환되는 음악과 영상을 잘 활용하면, 작품의 몰입도를 확 높일 수 있고, 즉각적으로 관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며, 감정을 끌고 갈 수 있다.

 

<곤 투모로우>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상황 설명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를 표현한 음악이 많다. 그것은 역사적 정보가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가게 하기 때문에, 보다 극에 쉽게 빨려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무대는 자막과 영상을 많이 사용했는데, 그 수준이 적절했다. 따라서 작품을 보면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저긴 어딘가... 하면서 객석에 앉아 다시 스토리를 복기해야 하는 일도 없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이지나 연출이 시도한 누아르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과 분위기에 안무까지 섞여 뮤지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다지 복잡할 것 없는 스토리에, 평면적인 캐릭터에 다채로운 서사를 관객이 흥미를 가지고 즐길 수 있도록 음악과 연출이 기능하는 것이다. 역으로, 오히려 복잡한 스토리라면 그 이야기를 따라가도록 음악과 연출이 좀 자제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스토리라면 애초에 뮤지컬로 만들어질까, 의심되기는 한다. 

 

 

쓰다 보니, <곤 투모로우>가 내용과 캐릭터가 평범한데, 음악과 연출로 분위기를 때우는 뮤지컬이라고 평한 것 같다. 하지만 캐릭터가 전형적이라고  이 뮤지컬을 폄하하기엔, 무리가 있다. 간혹 역사 뮤지컬을 보다 보면 스토리를 따라가다가 뮤지컬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놓쳐 버리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관객들이 작품에 무리 없이 젖어들 수 있도록 스토리와 캐릭터를 배치하는 것이 중요한데, <곤 투모로우>는 실패한 혁명가,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 국정에 실패한 왕, 매국노를 설정함에 있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 그들의 캐릭터를 납득할 수 있도록 하고 캐릭터의 보다 깊은 심리는 음악으로 채운다. 게다가 감각적인 연출은 이 작품이 구한말이 아니라, 현재라는 느낌이 들 수 있게 한다. 뮤지컬은 관객에 의해서 조금씩 바뀌고, 새롭게 다듬어진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의 다음 시즌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