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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창고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

by 야키디 2023. 9. 5.

미셸 투르니에는 철학자이자 독일 형식주의자로서 레비 스트로스와 바슐라르의 영향을 받아 문학으로 전향하게 된 작가이다. 그는 작품 속에 진정한 철학과 진정한 문학이 교감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가 추구하는 문학의 형태는 헤겔의 철학적인 면과 졸라식 묘사의 객관성을 조화시킨 소설이다. 

 

그는 철학과 소설이 결합된 작품을 쓰기 위한 방편으로 불변의 상태로 여전히 살아 있는 신화를 주제로 삼는다. 신화와 철학은 그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신화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작품 속에 '신화 다시 쓰기'를 시도한다. 

 

그런 그가 70세가 되던 1994년에 출간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은 우리의 사고의 범주가 상대적인 쌍을 이루고 있으며, 다른 한 부분은 각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개념들 사이에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준다. 에세이 형태로 쓰여 있지만 철학과 신화와 문학 작품이 인용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이 가볍지 않고, 쉽지도 않다. 우리 주위에 가까이 있는 사고의 대상으로 시작해 점점 깊이 있고 무거운 철학적 내용으로 흐름을 전개시킨다. 

 

그럼 이제 미셸 투르니에가 제시한 55가지 개념 쌍 중에서 3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1. 포크와 숟가락 

 

포크(글자 그대로 작은 쇠스랑)는 작은 손을 닮았다는 것을 첫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손가락은 저마다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건을 잡는 능력이 있고, 특히 같은 평면에 있는 네 개의 손가락에 맞세울 만한 엄지가 하나 더 붙어 있다. 그러므로 다른 네 개의 손가락에 상반되는 이 다섯 번째 손가락의 중요성은 강조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폴 발레리는 여기서 반영 의식의 상징을 상정하였다. 말하자면 작은 손이지만 잡을 힘이 없는 네 개의 손가락이 달린 포크에는 엄지가 없다는 사실을 그는 제시하였다. 포크는 딱딱한 음식을 찍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은 찍는 도구이다. 그러나 포크를 뒤집으면 사이가 벌어진 일종의 숟가락처럼 음식을 한 입의 분량으로 모을 수도 있고, 음식을 접시 바닥에 으깨어 죽을 만들 수도 있다.

 

숟가락에는 정신집중이 필요하다. 숟가락은 저녁에 특히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수프가 진할 때 숟가락들은 거기에 꽂혀 있다. 수프가 뜨거울 때 우리가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수프를 삼키는 것은 수프를 찬공기와 섞으려 하기 때문이다. 포크에는 악마의 성향이 있다. 이것은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을 지옥의 불속에 던지기 위하여 만들어진 악마의 손에 들려진 쇠스랑에서 연유한다. 숟가락이 채식주의를 상징한다면, 포크는 육식을 상징한다. 

 

옛날에 어떤 식당들은 ‘포크에 따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것은 동전 한 닢으로 포크를 한 번만 냄비에 담가 찍어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서글픈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숟가락은 그와 반대로 악의나 요행 없이 움직인다. 숟가락은 휘젓지 않고 액체를 떠내기 위하여 표면을 살짝 스칠 뿐이다. 숟가락에는 우유에 보릿가루를 넣어 끓인 죽을 갓난아기에는 먹이는 어머니의 애정 어린 끈기의 원형과 오목함과 부드러움이 있다. 숟가락과 포크에는 각기 밝은 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있다. 숟가락은 크리스마 때 불이 밝혀진 긴 밤을 상징하고, 포크는 정월 초하루의 떠들썩하면서도 짧은 밤을 상징한다. 

 

2. 아폴로와 디오니소스 

 

아폴로는 그리스 신화에서 시, 의학, 건축의 신이고, 특히 태양의 신이다. 디오니소스는 상징적으로 포도주를 가지고 아주 요란스러운 전원축제인 디오니소스제를 주관하였다. 이 수호신들이 대조적인 인성과 예술의 영감의 두 유형의 축이 되기 위해서는 니체와 그의 에세이 <비극의 탄생>(1871)을 기다려야만 했다. 니체에 의하면, 아폴로는 시(時)의 신이다. 그러나 이에 관계되는 것은 신과 영웅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인 호머의 서사시에서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루이 14세는 자신을 태양왕이라고 했지만 아무도 아폴로와이 유사성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다. 정치는 인생의 성회와 명예를 위태롭게 하는 언동과 함께 존재할 뿐이다. 아폴로가 군림해도 통치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누구나 평온한 마음으로 악의 없이 통치하지는 못한다. 바로 여기에서 디오니소스가 등장하였다. 이 난폭한 자는 존재를 인식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모습에서까지 거림 낌 없이 존재를 사로잡는다. 그는 수태 능력을 구현하지만, 아무것에도 도취되지 않은 채 순결하게 창조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는 삶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불가분의 폭력, 질병, 죽음 또한 전적으로 수용한다. 염세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는 자신의 상징을 적포도주에서 찾는다. 특히 디오니소스의 예술의 극치는 음악이다. 왜냐하면 음악은 지속과 템포와 변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음악은 청중을 열광시켜 유일한 영혼으로 결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폴로와 같은 유형의 영웅은 자신의 고독과 자율성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니체는 바그너에게 자신의 저서 <비극의 탄생>을 헌정하였다. 고전주의의 고상하지만 차갑고 비현실적인 낙원 이후에 나타난 낭만주의는 니체에게 디오니소스로 회귀한 것처럼 보였다. 니체에 의하면, 바그너 음악의 정수는 아폴로적인 구성과 디오니소스의 역동적인 염세주의의 결합이었다. 나중에 니체가 바그너에게서 멀어졌을 때 그는 <파르지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독교적인 영감을 간파하였다. 그때부터 니체풍의 작곡가로 불린 작곡가는 바그너가 아니라 조르쥬 비제가 되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하나의 별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내면에 카오스를 소유해야만 한다. 

 

3. 신과 악마 

모든 사물의 창조자요, 지배자인 전지전능한 신은 인간이란 피조물에게 신앙과 신학이란 두 가지 방법으로 존재한다. 신앙은 신자가 신이 지상에 현존한다고 느낌으로써 신을 체험하는 것이며 신이 지상에 현존한다는 것을 통해 고독을 느끼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현존은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이때 신비론자는 ‘어두운 밤’에 ‘종교적 환희의 시험’을 경험한다. 모든 관념 중에서 신의 관념만이 오로지 존재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관념이 모든 관념 중에서 가장 완전하기 때문이다. 만약 관념이 이런 속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면, 곧 이런 속성을 내포할 수 있는 다른 존재를 통해 관념을 거부하고 바꾸어야만 할 것이다. 

 

신이 피조물을 완전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피조물은 더 많은 자유를 향유한다. 그 때문에 동물들은 죄를 지을 수 없다. 창조의 다른 극단에는 피조물 중 가장 완전한 존재인 마왕이 교만에 빠져 신과 동등한 존재하고 주장하게 된다. 마왕은 지옥의 왕국을 지배하며 악마처럼 인간의 운명에서 떠나지 않는다. 중세는 우리에게 악마의 흉측하고 혐오감을 주는 이미지를 남겼다. 

 

사탄이 위대한 패배주의자의 밝지 못한 아름다움을 되찾으려면 존 밀턴과 그의 작품 <잃어버린 낙원>(1671)을 기다려야만 한다. 로드 바이런과 샤를 보들레르는 사탄을 회의적인 지능과 명철한 현혹으로 미화하였다. 20세기 프랑스 문학은 악마 같은 인물에게 도움을 폭넓게 청하고 있다. 악마는 레옹 블르아나 폴 클로델 폴 발레리 프랑스와 모리아크, 장 폴 사르트르 등의 작품 속에 등장한다. 악마는 생생하고 효과적이며 극적인, 말하자면 긍정적인 방식을 부정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