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종합 무대 예술이다. 여러 장르의 예술 형태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점에서 '종합' 예술이고,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무대라는 현실 공간에서 이루어진 다는 점에서 '무대' 예술이다. 뮤지컬의 종합적 속성은 음악과 춤의 본격적 사용을 통해 강조된다. 그래서 뮤지컬의 주인공들은 기쁘거나 슬플 때와 같이 감정적으로 고조되는 순간에 노래와 춤을 추고, 어떤 경우네는 일상적이고 이성적인 표현을 할 때에도 노래와 춤을 춘다.
뮤지컬은 종합예술과 무대예술이라는 점에서 오페라와 비슷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음악, 즉 소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이다. 오페라에서는 아무리 연기와 가사 전달 등 다른 요소들이 중요하다고 해도 결국 오페라를 가장 오페라답게 하는 것은 오케스트라와 노래, 즉 음악이다. 그러나 뮤지컬은 클래식 음악 대신 세미클래식과 재즈, 팝, 록, 그 밖에 다른 지역의 월드 뮤직 등 쉽고 대중적인 양식을 사용하고, 배우의 연기와 춤을 비롯하여 여러 무대 효과를 중시한다. 따라서 오페라는 눈을 감고 감상해도 괜찮지만, 뮤지컬의 경우 눈을 감아 버리면 많은 요소를 놓치게 된다.
그렇게 재미있게도, 뮤지컬은 과거 오페라가 걷던 길을 정반대로 밟고 있는 듯하다. 한때 오페라가 귀족을 위한 고급예술에서 대중예술의 길로 나아갔던 반면, 뮤지컬의 출발은 대중예술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페라의 고급스러움을 지향하는 경향을 보인다. 뮤지컬의 고급화 노력은 대중예술로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보이는데, 대중들의 안목이 점차로 고급화되는 것과도 연관된다. 따라서 뮤지컬의 예술성은 대중성이 녹아든 예술성, 대중성을 전제로 한 예술성이다. 그러므로 뮤지컬의 작품성은 예술성과 대중성이라고 하는 이중적 잣대에 의해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뮤지컬의 스타일을 정리할 때에도, 예술성과 대중성을 고려해야 한다. 예술의 스타일은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다양한 변주로 이루어지겠지만, 그 틀을 정리해 두면, 현재 뮤지컬이 어느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창작자와 뮤지컬을 보다 깊이 보고자 하는 관객들에게 유용하다.
1. 쇼 뮤지컬 (Show Musical)
쇼뮤지컬은 노래와 춤의 매력을 우선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줄거리 속에 노래와 춤이 어떤 식으로 엮어지는지 노래와 춤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등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진짜로 보여주려 하는 것은 '모든 걱정 잊고 좋은 시간 보내라'라고 하는 여흥의 메시지다. 중요한 것은 노래와 춤의 즐거움이다. 노래와 춤에 의한 여흥을 강조하는 쇼뮤지컬의 모습은 뮤지컬 초기 역사에서 유행했던 각종 버라이어티 쇼와 오페레타를 닮은 초기 뮤지컬들에 잘 나타나 있다.
초기 쇼뮤지컬의 전통은 아직까지도 많은 뮤지컬들에 그대로 남아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캣츠>(1981)는 이렇다 할만한 줄거리가 없이 고양이들의 노래와 춤이 다양하게 이어진다는 점에서 화려한 옛 쇼 뮤지컬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1980)도 간단한 줄거리 속에서 춤과 노래를 부각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한 전설적인 안무가 밥 파시의 무용장면들만 모아 만든 <파시>(1999)는 줄거리가 아예 없이 노래와 춤들을 엮었다. 현대에 만들어진 이러한 작품들을 줄거리의 유무에 관계없이 일련의 노래와 춤의 연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한 현실적인 내용보다는 이국적이거나 낭만화된 내용을 다룬다는 점에서 '뮤지컬 레뷔' 혹은 '엑스트라바간자 뮤지컬'이라 부르기도 한다.
철저히 계산된 극적 장치를 통해 펼쳐지는 화려한 노래와 춤의 묘미는 오늘날 레뷔나 엑스트라바간자라 불리는 뮤지컬을 넘어서서 다른 영역의 뮤지컬들 즉, 댄스 뮤지컬이나 록 뮤지컬, 재즈 뮤지컬, 블록버스터 뮤지컬 등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2. 북 뮤지컬 (Book Musical)
북 뮤지컬은 대본을 중시한 뮤지컬이다. 북 뮤지컬에서 노래와 춤은 그 자체의 모습을 과시하는 식이 아니라, 대본이 제공하는 드라마의 전체적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간다. 초기 쇼 뮤지컬은 대본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의상과 무대 그리고 배우들의 노래와 춤 장면들이었다. 그러나 보니 노래와 춤의 극적 맥락이라든지 줄거리의 감동 따위는 별로 문제 되지 않았다. 북 뮤지컬은 이러한 초기 뮤지컬들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북 뮤지컬에서 노래와 춤은 아무리 흥겹고 재미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 즉 드라마를 위해 존재한다. 예전같으면 스타 배우의 노래 솜씨와 춤 솜씨를 부각하기 위해 노래와 춤을 만들었겠지만, 북 뮤지컬에서 노래와 춤은 전체의 드라마 속에 통합해 들어간다. 드라마가 목적이고 노래와 춤은 이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다.
북 뮤지컬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인물은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와 작가 해머스타인 2세다. 그들은 파트너십을 이루어 <오클라호마!>, <왕과 나>, <남태평양> 등을 만들었다. 이중 <오클라호마!>(1943)는 북 뮤지컬의 본격적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작품이었다. 이들은 대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노래와 춤을 극 안에 통합시키려 했다.
오늘날 새로 만들어지는 뮤지컬은 더 이상 북 뮤지컬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지만, 북 뮤지컬이 갖고 있는 기승전결의 탄탄한 구성과 극적으로 설득력있는 노래와 춤의 전통은 오늘날의 뮤지컬에도 깊숙이 배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북 뮤지컬의 약점이 있다. 북 뮤지컬의 지향하는 방식은 리얼리즘 계열의 일반 연극이 지향하는 바의 것이다. 따라서 북 뮤지컬의 전개 방식에 의하면 노래와 춤은 아주 한정된 방식으로만 사용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래와 춤은 정서적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극의 몰입을 깨는 순간을 만든다. 이제까지 일반 대사와 사실적 연기를 통해 쌓아 올렸던 극적 몰입이 노래와 춤의 개입으로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무대가 제공해 오던 모방의 세계가 현실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 극의 개연성이 흔들린다. 극을 정서적으로 고양시키는 클라이맥스의 순간이 극의 허구를 깨뜨린다는 이러한 모습은 북 뮤지컬이 갖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노래와 춤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오히려 드러내놓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댄스 뮤지컬'과 '콘셉트 뮤지컬'은 노래와 춤을 좀 더 본격적으로 부각해서 이것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려 한 결과이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일반 대사 없이 혹은 대사를 최소화해서 전체는 노래와 춤으로 일관한다면 그 가운데 어떤 해결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성 쓰루 뮤지컬(Sung-through musical)이다. 성 쓰루 뮤지컬에서는 노래와 춤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따라서 관객은 노래와 춤에 집중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무대 위에서 현재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을 잊게 된다. 이것은 수백 년 동안 오페라에서 사용해 오던 관습이다. 오페라의 어려움에서 이탈해서 대중성을 지향하여 만들어진 뮤지컬이 '노래와 장면'의 형식에서 벗어나 다시 오페라의 관습으로 되돌아가게 된 것이 아이러니하다.
3. 댄스 뮤지컬 (Dance Musical)
초기 쇼 뮤지컬에서 춤은 그 자체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춤은 그 자체의 모습보다는 전체적인 자연스러운 맥락에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그래서 뮤지컬 <카바레>에서의 춤은 극중극의 일환으로 나이트클럽에서 추는 춤이고, <집시>에서 추는 춤은 보드빌과 벌레스크 무대에서 실제 상황으로 이루어지는 춤이다. <오클라호마!>에서의 춤은 카우보이와 마을 처녀들의 댄스파티라는 실제 상황이거나 혹은 여주인공의 꿈속에 나타나는 환상이다. 그런데 춤을 자연스러운 상황에서만 추게 하다보니, 춤의 효과를 최대화하지 못하는 폐단이 나타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춤의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줄거리의 전체적 맥락에 어긋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는 이러한 본격적인 댄스 뮤지컬의 예이다. 이 뮤지컬은 줄거리 전개상 중요한 장면들이 춤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12개의 춤 장면은 춤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회적 편견과 순수한 사랑을 표현하고, 결투의 격렬함을 그리고 원한과 분노를 표현한다. 이때 춤은 말이나 노래를 대신해서 줄거리를 전개하고 등장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아주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된다.
신기하게도 사실적 연기 대신 양식화된 춤동작으로 표현하면 그 표현의 강도가 엄청나게 증폭된다. 댄스 뮤지컬에서는 원래는 말이나 노래로 표현해야 할 상황을 양식화된 춤동작을 통해 강렬하게 표현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댄스 뮤지컬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이후 댄스 뮤지컬의 전통은 안무가 수잔 스트로먼의 <컨택트>(1999)로 이어진다. 이 작품에 사용되는 음악은 차이코프스키의 왈츠곡 같은 클래식부터 시작해서 비치 보이스의 팝송, 배니 굿맨의 스윙 등 다양하다. 내용도 일정한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뉴욕 빌리지 바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노란 드레스의 여인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세 개의 에피소드를 엮어 만든다. 다양한 음악과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작품 전체에 일관되게 사용되는 춤이다.
댄스뮤지컬에서는 춤을 중시하다 보니까 자연히 대본과 전체적 줄거리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하고 대신 춤을 통한 표현력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댄스 뮤지컬은 줄거리보다는 개념이나 아이디어, 주제를 더 중시하는 이른바 '콘셉트 뮤지컬'의 특성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4. 재즈 뮤지컬 (Jazz Musical)
초기의 뮤지컬들은 오페라의 대중적 형태인 오페레타나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서 들음직한 세미 클래식 음악과 틴판 앨리 풍의 팝송을 한데 합쳐놓은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음악 어법에 싫증을 느낀 일부 작곡가들은 새로운 스타일의 뮤지컬 음악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그중 대표적인 양식이 재즈였다.
1960년대 이전의 뮤지컬 중 재즈 음악을 사용한 경우로는 거쉬인의 <포기와 베스>(1953)가 있다. 이 작품은 블루스를 위주로 한 재즈음악을 뮤지컬에 도입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번스타인이 작곡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도 재즈 음악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뮤지컬들은 재즈의 특징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재즈를 클래식 어법으로 표현한, 말하자면 세미 재즈 혹은 클래식 재즈에 해당한다. 노래 반주를 재즈 밴드가 아니라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맡는 것만 보아도 이것들이 아직 본격적인 재즈 음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본격적 재즈 뮤지컬의 등장은 존 칸더의 작품을 통해 시작된다. 작사가 프레드 앱과 함께 만든 <카바레>(1966), <시카고>(1975)의 작품들에서는 재즈 음악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카바레>는 1930년대 나치즘에 물든 퇴폐적 분위기의 독일 나이트클럽을 배경으로 하면서 나이트클럽에서 연주되던 카바레 풍 밴드가 연주를 하고, <시카고>(1975)는 미국 보드빌 쇼무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바레 풍의 밴드가 딕실랜드 재즈와 래그타임 등을 연주한다.
재즈 뮤지컬이 어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전설적인 안무가이자 연출가였던 밥 파시의 활약이 크게 작용하였다. 밥 파시는 특유의 개성적인 재즈 댄스를 통해 존 칸더가 작곡한 <카바레>와 <시카고>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보드빌 쇼무대의 배우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쇼무대에서 발레, 재즈 댄스, 탭 댄스 등을 익힌 파시는 쇼무대와 술집의 재즈 댄스를 본격적으로 뮤지컬에 도입하고 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공헌을 하였다.
5. 콘셉트 뮤지컬 (Concept Musical)
콘셉트 뮤지컬은 말 그대로 작품의 콘셉트를 중시하는 뮤지컬이다. 콘셉트란 곧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바 즉 주제나 생각 같은 것이다. 콘셉트를 어떤 식으로 부각하는지를 이해하려면 가장 포변적인 뮤지컬의 형식인 북 뮤지컬과 비교는 하는 것이 좋다. 북 뮤지컬에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 속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콘셉트 뮤지컬에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 빠져들지 않게 한다. 관객은 지금 무대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실제가 아니라 연극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럼으로써 지금 작품이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관객이 느끼게 되는 메시지가 바로 콘셉트 뮤지컬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콘셉트'이다. 콘셉트를 부각하려면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 몰입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 줄거리가 너무 사실적으로 전개되면 안 된다. 이야기에 집중을 하다 보면 관객이 작품 속에 너무 깊이 몰입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부각하려던 콘셉트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콘셉트 뮤지컬에서는 줄거리가 느슨하게 짜여있던지, 아니면 아예 줄거리 자체가 없기도 하다.
뮤지컬 <유린타운>, <카바레>, <시카고>, <컴퍼니>, <인투 더 우즈> 등은 느슨하게나마 줄거리가 유지되는 경우이고, 브로드웨이 최고의 롱런을 자랑하던 <코러스 라인>이나 최초의 록 뮤지컬 <헤어>는 아예 줄거리 자체가 없이 만들어진 경우다.
콘셉트 뮤지컬은 무대 위가 사실 공간이 아니고 꾸며진 가상의 공간임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놓으려 했던, 브레히트의 연극을 닮았다. 전통 연극에서 배우들은 제4의 벽을 설정해 놓음으로써 무대를 네 개의 벽면으로 둘러싸인 사실적 공간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일련의 사건들을 실제 일어나는 것처럼 연기한다. 관객은 제4의 벽을 통해 무대 위 가상의 사건을 마치 실제 있는 것처럼 훔쳐보면서 극 속에 몰입한다. 반면 브레히트 연극에서는 이 벽을 헐어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최초로 콘셉트 뮤지컬을 시도한 뮤지컬 <Love Life>)1948)의 작곡가 쿠르트 바일이 브레히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콘셉트 뮤지컬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 대신 생각을 하게 하려는 것은 이전까지의 뮤지컬들에 지배적으로 나타나있던 현실도피적 성향을 벗어나 철저하게 삶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대개의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은 이러한 관객의 '회피주의 심리'에 충실하다. 이런 식으로 뮤지컬은 대중들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지만 언제나 현실 세계와의 괴리감이 존재해 왔으며 때문에 예술이라기보다는 오락물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콘셉트 뮤지컬은 이러한 현실도피적 성향을 뮤지컬에 염증을 느낀 일부 창작자들의 진지한 노력의 결과이다.
6. 록 뮤지컬 (Rock Musical)
최초의 록 뮤지컬은 뮤지컬 <헤어>(1968)다. 이 작품은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기존 질서에 대한 히피들의 반항과 프리섹스 등의 소재와 무엇보다 앰프로 소리를 확대해서 마이크를 통해 요란하게 울려 나오는 록큰롤 음악 때문이었다. <헤어>는 같은 시기의 영국 뮤지컬 <토미>(1969)와 더불어 젊은이를 위한 새로운 뮤지컬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마이크 없이 생음악을 연주하던 전통적인 뮤지컬을 사라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
록큰롤이 나오기 전까지는 뮤지컬이 대중음악을 주도했다. 록큰롤이 나오면서부터 뮤지컬은 젊은 사람들과 대중음악 모두로부터 고립되었고, 나이 든 중년 관객들만이 찾는 과거지향적이고 보수적인 것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이에 록 뮤지컬 <헤어>가 등장했지만,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에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당시 뮤지컬을 만들던 사람들의 태도였다. 당시 뮤지컬 작곡계의 왕으로 군림하던 리처드 로저스는 <헤어>의 1막만 보고 극장문을 나섰다. 뮤지컬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나이 든 관객만큼이나 예전부터 익숙하게 들어오던 젊잖고 고전적인 노래에 머물기를 원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록큰롤 노래의 단순성에 있었다. 록큰롤은 짧고 단순한 악절과 간단한 몇 개의 코드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단순한 구성으로 되어 있었다. 반복적인 선율에 가사를 붙이다 보니,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뮤지컬에서 노래 가사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면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마음 상태를 노래가사로 풀어야 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록큰롤 음악으로는 아주 힘들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조셉과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1969),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1), <에비타>(1978) 등으로 이어지는 초기 작품들을 통해 록 뮤지컬의 숙제를 풀어냈다. 그것은 록큰롤을 사용하되 부드러운 팝과 기타 브로드웨이에서 사용해 오던 다양한 양식의 음악을 섞는 것이었다. 웨버의 모범을 따라 만들어진 록 뮤지컬들은 모두 순수한 록 뮤지컬이라기보다는 록과 다른 대중음악들이 섞인 팝-록 뮤지컬이다.
뮤지컬 <록키 호러 쇼>(1973), <피핀>(1972), <그리스>(1972) 등은 모두 1970년대 팝-록 뮤지컬이다. 80, 90년대 록 뮤지컬들도 대부분과 팝과 록을 혼합한 형태의 음악이다. 안타깝게도 록 뮤지컬이라 불리는 작품들 중에 초기 록 뮤지컬의 신선함을 간직하고 있는 예는 많지 않다. 이것은 반드시 록 음악만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음악들을 혼합해서 만들기 때문이 아니다. 록 음악을 통해 무엇을 나타내려 하는가의 문제이고, 또 한편으로는 어떤 록 음악을 가지고 만드느냐의 문제이다. a
조나단 라슨의 <렌트>(1996)는 자유와 저항, 실험이라고 하는 초기 록 뮤지컬의 신선한 정신을 계승한 보기 드문 예이다. <렌트>에 사용되는 음악은 얼터너티브 록과 힙합 등을 한데 합쳐놓은 최첨단의 록 음악이다. 그러나 내용은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각색한 것이다. 19세기 파리의 예술가들 대신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방황하는 동성애자와 젊은 에이즈 환자들을 다룸으로써, 자유와 사랑을 위해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비록 록 뮤지컬이라 불리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새로 나오는 거의 모든 뮤지컬들은 적지 않게 록큰롤의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헤어>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이후 록 뮤지컬의 대두로 무대에서 녹음이나 마이크의 사용 없이 순전히 생음악만으로 노래를 부르는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라이온 킹>, <미녀와 야수>, <파리의 노트르담>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뮤지컬들은 팝-록 뮤지컬의 영역에 깊숙이 발을 딛고 있다.
7. 블록버스터 뮤지컬 (Blockbuster Musical)
뮤지컬의 대형화는 20세기 초 영화의 출현과 함께 궁지에 몰린 뮤지컬이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의 형태로 발전해 온 것이고 또한 무대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1970년대 이후 영국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내놓은 일련의 작품에 의한 것이다. 이제까지 뮤지컬의 중심이었던 브로드웨이는 웨버가 만든 영국 뮤지컬들에 의해 무너져 내렸고, 여기에 영국의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가 기름을 부었다.
매킨토시가 제작한 <캐츠>,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은 1981년부터 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대형 뮤지컬 들로, 오늘날 '빅 4'라는 이름으로 신성화되면서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화려하게 열었다. 영국의 빅 4는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여, 두 가지 전략을 썼다. 첫 번째는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전에 미리 음반을 내놓아 사람들로 하여금 공연에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두 번째는 티켓 한정 예매제이다. 티켓을 예매하되 무한정 티켓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일정기간만 티켓을 판매함으로써 사람들의 티켓 예매를 은근히 부추겼다. 이러한 전략들을 통해 블록버스터 뮤지컬은 공연도 할리우드 영화만큼이나 문화산업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전통을 확립했다. 이들에 자극받은 미국의 디즈니 회사는 <미녀와 야수>(1994), <라이온 킹>(1997), <아이다>(2000)등으로 뮤지컬 사업에 투자했다.
블록버스터 뮤지컬은 수천억 원을 들여 만든 할리우드 영화의 규모에 접근하는 한편, 영화도 뮤지컬도 없던 시절 귀족들의 호사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퍼부어 만들었던 19세기 그랜드 오페라에 접근한다. 블록버스터 뮤지컬은 옛 그랜드 오페라가 그랬듯이 무대 장치나 의상, 춤 등 눈에 보이는 스펙터클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엄청난 규모를 과시한다.
정보출처: 김학민 저, <뮤지컬 양식론>, 경희대학교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