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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뮤지컬 창고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인생 2부

by 야키디 2023. 8. 3.

1980년대는 스티븐 손드하임과 해롤드 프린스가 결별하고 각본가 겸 연출가인 제임스 라파인과 새로운 파트너가 되어 예술적 실험을 더욱 심화하는 시기였다. 또한 이 시기의 브로드웨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위기에 처해 진 상황이었다.

 

작품의 부재에 따른 리바이벌 공연의 성행과 대형화에 따른 실험적 작품의 창작 기피,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카메론 매킨토시를 위시한 런던 뮤지컬에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브로드웨이는 예전 같은 명성을 누리지 못했다.

 

이 상황 속에서 손드하임은 독창성과 예술적 성과를 새로이 평가 받으며 미국 뮤지컬을 지키는 마지막 자존심이자 수호신으로 상징되기에 이른다.

 

 

 

해롤드 프린스와 작업한 마지막 작품은 <Merrily We Roll Along>(1981)이다. 내용은 과거에 작곡가, 작사가, 작가를 꿈꾸던 세 친구들이 예술가가 되어 그들이 당면한 과제인 예술성과 상업성의 조화를놓고 격론을 벌이는 이야기다. 1980년을 배경으로 시작해 시간을 거슬러 회상해 가며 1954년에 끝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손드하임은 줄 스타인과 어빙 벌린과 같은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쇼툰 스타일의 음악을 시도했다. 

 

그러나 공연은 단 16회 만에 막을 내렸다. 이 작품으로 손드하임과 프린스는 파트너 관계를 정리했다. 손드하임은 예술성을 중시한 스타일을 추구했지만 프린스는 <에비타>의 연출을 맡아 성공을  거둔 뒤라 관객들이 호응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연출가로서의 야망을 확실히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은 계속 이어져 후에 <Bounce>(2003)라는 손드하임의 신작 뮤지컬에서 다시 함께 작업했다.  

 

<Merrily We Roll Along>이 비록 흥행에 실패했고, 프린스와의 창작 파트너 관계에 종말을 가져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인기가 오르는 작품이 된다. 1992년 영국 레스터 헤이마켓 공연과 1994년 뉴욕 요크 극장 공연은 모두 음반으로 발매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2003년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손드하임 페스티벌'에서도 재공연을 가졌다. 2008년에는 존 도일이 연출한 새 버전이 영국 벅셔의 워터밀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Merrily We Roll Along>이후 프린스와 결별한 손드하임은 브로드웨이 작가 겸 연출가인 제임스 라파인을 만나게 된다. 프린스가 강렬한 대서사극이나 모던한 콘셉트 뮤지컬에 강했다면 라파인은 오프 브로드웨이에 적합한 아기자기한 무대를 선호했다.  

 

1984년 발표한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는 손드하임과 라파인의 재능과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작품의 1막에서는 점묘화가인 조르주 쇠라의 '라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의 그림과 화가 '조지'가 무대에 등장하여 그림(예술)에 대한 열정과 그로 인한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 2막에서는 현대의 갤러리로 배경이 바뀌어 현재의 화가 '조지'의 그림(예술)에 대한 생각과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손드하임은 쇠라의 점묘법을 적용하여 쇠라가 점묘법을 설명하여 캔버스에 점을 콕콕 찍는 장면에서 미니멀리즘 선율을 가사와 멜로디에 반영했다. 또한 라파인은 쇠라의 그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세트로 '하나의 그림과 예술가의 혼'이라는 콘셉트에 더욱 풍부한 재미를 더 했다. 이 작품으로 손드하임은 1985년에 퓰리쳐 상을 수상한다.  

 

손드하임과 라파인의 다음 작품은 <Into the woods>(1988)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림 형제의 유명 동화의 주인공들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등장한다. 1막에서는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저마다의 목적으로 숲 속으로 들어가 사건을 해결해가는 스토리를 보여주고, 2막에서는 '그 후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전통적인 동화의 결말에서 벗어나 주인공들이 불행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그 해결책을 찾아가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토니상 작곡상, 극본상, 여우주연상, 베스트 리바이벌 상, 드라마데크 최고 작품상을 수상했다. 토니상을 수상했을 당시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해롤드 프린스가 작업한 <오페라의 유령>과 경합을 벌였다. <Into the woods>는 아름다운 음악과 손드하임 특유의 유머 감각을 갖춘 작품으로 평가 받으며, 1988년 미국 투어, 1990년 영국 웨스트엔드 공연, 1991년 텔레비전 프로덕션, 1997년 10주년 기념 콘서트, 2002년 로스앤젤러스 프로덕션과 같은 해 브로드웨에서 재공연 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 손드하임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다룬 작품들과 색다른 콘셉트의 뮤지컬을 속속 발표한다. 1991년 오프 브로드웨이의 플레이라이츠 호라이즌에서 발표한 <어쌔신>은 콘셉트 뮤지컬 중에서도 가장 대담하고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각자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미국 대통령을 저격했던 인물들이 가상의 공간인 카니발 사격장에 모여 암살 순간을 재현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을 통해 손드하임은 미국적인 이상주의에 대한 질문과 아메리칸 드림에 깔린 거짓말을 진단하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그러나 1991년 미국은 조지 부시가 TV에서 걸프전의 정당성을 연설했고, 미국 전역에 애국적인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발표된 이 작품은 한 달 만에 막을 내렸다. 또한 10년이 지난 2001년 가을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9.11 테러가 일어나 취소되었다. 결국 이 작품은 초연한 지 13년이 지난 2004년에야 브로드웨이 스튜디오 54에서 리바이벌 되어 토니상 리바이벌 작품상을 수상했다. 

 

손드하임과 라파인이 다시 힘을 합쳐 만든 <Passion>(1994)은 이탈리아 소설가 이지니오 타르체티의 <Fosca>를 원작으로 한 영화 <사랑과 열정>을 각색한 뮤지컬이다. 내용은 1863년을 배경으로 잘생긴 장교 조르지오와 병약한 포스카, 그리고 관능적인 유부녀 클라라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손드하임은 이 작품에 19세기 서간문 형식을 가사에 도입하여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