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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뮤지컬 창고

사극 뮤지컬의 스토리텔링 전략

by 야키디 2023. 8. 8.

사극 뮤지컬이란 용어는 공식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 사극 뮤지컬과 관련한 논문을 살펴보면, 유인경의 <1970년대 역사 뮤지컬 연구>에서 역사적 실존인물이나 실제 사건을 제재로 한 뮤지컬을 '역사 뮤지컬'이라 지칭하겠다고 언급했으며, 김성희는 <예그린 악단 연구>에서 '사극 뮤지컬'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오주은의 <전기 뮤지컬의 극작술 연구>에서는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삼는 뮤지컬을 '전기 뮤지컬'이라고 명명한다. 또한, 김유미는 <서사의 방법과 역사극의 새로운 방향>에서 역사적 시기를 배경으로 그 시대의 사회성을 반영하고자 하는 작품을 시대극(costume drama)이란 개념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극이라는 단어와 뮤지컬의 합성인 '사극 뮤지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된 내용을 포함하기에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사극 뮤지컬은 역사극의 한 갈래로 한국 뮤지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1997년 동양 최초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명성황후>와 2009년 초연 이후 거의 매해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려지는 <영웅> 또한 완성도 높은 사극 뮤지컬로서 알려져 있다. 특히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개발한 뮤지컬은 역사적 실존 인물이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다.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 제작한 <화성에서 꿈꾸다>, 성남아트센터의 <남한산성>,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이 공동 제작한 <홍길동>, 경상남도가 연희단 거리패에 의뢰하여 제작한 <이순신>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뮤지컬의 소재를 찾는 이유는 실존했던 이야기는 단순히 상상력에 바탕을 둔 허구적 작품보다도 감동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극 장르는 단순히 사료에 근거하여 마치 그 시대를 재현하는 것처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극은 역사와 허구의 만남으로 성립한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역사적 인물의 성격과 사건이 변형되고, 때로는 압축과 생략으로 역사를 드라미틱하게 탈바꿈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최근에는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이 결합된 팩션(Faction)이란 장르가 역사극의 한 지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팩션 장르의 경우는 팩트 보다는 픽션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역사극 안에 팩션 장르를 포함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역사극의 한 부분으로서 사극 뮤지컬을 논함에 있어서는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삼는 뮤지컬에 한하여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1. 사극 뮤지컬의 특징 

 

뮤지컬은 공연예술의 특성상 공간적 한계와 시간적 한계에 직면 할 수 밖에 없다. 뮤지컬 <이순신>에서는 영화 <명량>에서처럼 수 많은 수군을 무대에 세울 수 없다. 또한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처럼  이순신의 전 생애에 걸친 에피소드를 세세하게 나열할 수 없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그의 삶을 녹여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극 뮤지컬은 다른 뮤지컬과 같이 뮤지컬 넘버의 배치를 활용하여 플롯을 구성한다. 뮤지컬의 넘버들은 드라마를 진행시키는 요소로서 한 공간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넘나들기도 하고, 인물의 내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인 구성 방식을 따르더라도 사극 뮤지컬은 '사극'이라는 장르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1) 선택과 배제를 통한 압축 

역사 소재는 극작가가 기억을 통해 부각하고 싶은 과거로서 극작가의 의도를 내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 과거는 오늘날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적 에너지를 지닌 사건이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을 하기 위해서는 계획적으로 선택한 소재에서 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극화방식은 헤겔의 '변형' 개념이다. 

 

헤겔은 어떤 사건, 이야기 줄거리, 민족의 성격, 출중한 역사적 인물의 가장 내적인 핵심과 의미를 찾아내고, 사태의 내적인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자리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러한 '변형' 개념을 스토리텔링에 적용해 본다면 선택과 배제를 통한 압축을 통해 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할 때, 사료를 참고하여 캐릭터를 구상한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의 알려진 행동들 가운데에는 모순적인 측면이 있다. 더욱이 극 중 인물은 역사적 인물과는 다르게 분명함과 명료함을 갖추고 있다. 극 중 인물은 복잡하고 가변적인 역사적 인물을 특정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 유형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주인공의 유형이 결정되면 그 성격에 어울리는 플롯을 선별하게 되는데, 이때 유형이 갖추어야 할 사건들을 선택하고 배제하는 작업이 수반된다. 

 

이를 통해 작품의 주제가 더욱 명확해진다. 그러나 사료의 선택과 배제는 역사적 인물과 사실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 발생할 수도 있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경우 그녀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 보다는 개인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비극적인 이미지를 부각했기 때문에 명성황후를 시대의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따라서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바탕으로 뮤지컬을 만들고자 할 때는 단순히 극적이고 자극적인 부분에 매료되어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다시 소환할 명확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2) 허구적 인물의 설정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사극 뮤지컬에서는 주인공의 고뇌와 역경을 헤쳐 나가는 동기를 만들기 위해, 혹은 주인공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허구적 인물을 설정하기도 한다. 

 

뮤지컬 <엘리자벳>에서는 끊임없이 주인공 엘리자벳을 유혹하는 '죽음'이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뮤지컬 <에비타>에서는 '체(che)'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에바 페론의 인생을 관찰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뮤지컬 <모차르트>에는 모차르트의 내면에 존재하는 천재성을 상징하는 소년 '아마데'가 등장한다. 이렇듯 관념적인 것을 의인화하여 주인공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마치 실존 인물인 것처럼 무대에 등장하여 캐릭터와 교류하고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뮤지컬 <영웅>에는 설희와 링링이라는 두 허구의 인물이 등장한다. 링링은 안중근의 캐릭터 이면에 있는 부드러움을 드러내는 역할과 동시에 안중근과 독립군들에게 희망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며, 설희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려는 여성 캐릭터의 역할을 맡아 안중근과 독립군들의 전우애와 독립의 열망을 강조한다. 이렇듯 설희와 링링이라는 두 여성 가상 인물을 통해 뮤지컬은 이토와 안중군, 두 인물이 더욱 부각되는 효과를 준다. 

 

허구적 인물 설정은 뮤지컬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고 캐릭터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 진행된다. 더욱이 확인 가능한 사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에서는 주인공과 대립되는 인물이나, 상황을 멋대로 각색하기는 어렵다. 또한 수십 년의 역사를 몇 시간 내에 압축해야 하기 때문에 허구적 인물을 설정하여 드라마를 보완하는 일은 필요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뮤지컬 <세종, 1446>에서는 세종의 반대편에 선 인물로 전해운이 등장한다. 그는 세종의 세자시절부터 관리로 존재했던 인물로 세종의 재위 기간 내내 그의 입지를 뒤흔든다. 마지막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때까지 그는 세종의 강력한 반대세력으로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인물은 실록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역사서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인 전해운은 세종의 업적을 강조하고, 그의 정치를 반대하는 세력의 대표로서 기능한다. 

 

실제했던 사건과 인물로 출발하는 사극 뮤지컬의 강점은 만들어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실이라는 데서 오는 관객들의 믿음에 기반한다. 따라서 이때, 허구의 인물이 개입하여 그 믿음을 뒤흔든다면 사극 뮤지컬만이 가진 매력이 반감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허구의 인물을 설정 할 때는 역사 속 실존 인물이나 사건과 잘 얽혀진 스토리텔링이 가능한지 여부를 파악하고 실존 인물과 어떠한 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여 배치하는 일이 중요하다. 

 

3) 앙상블의 활용 

 

뮤지컬에는 여타의 공연과다른 특별한 양식이 존재한다. 작품에서 시각화와 청각화를 담당하는 앙상블(Ensemble)이 그것이다. 앙상블은 제3자적 서술자 역할을 담당하며 드라마를 전개하고, 인물의 묘사하고, 장면을 설명하고, 작품 주제를 구체화하고, 분위기를 조성하고, 스펙터클과 코미디를 제공하는 극적인 기능을 한다.

 

이들의 역할은 사극 뮤지컬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뮤지컬 <명성황후>에서는 극 중 배경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무과시험, 화관무 등을 표현해내는 소위 '칼군무'를 선보여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뮤지컬 <영웅>에서는 독립군과 일본 순사들의 추격 장면이 등장하는데 4분 30초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철제구조물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무대 안팎을 오간다. 이 장면은 뮤지컬 <영웅>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사극 뮤지컬은 주어진 시간 내에 작가가 선택한 역사의 한 부분을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물론 작가는 역사가가 아니기 때문에 과거의 사실이나 사건을 재현해야 하는 임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은 "과거의 시간을 보편적으로 추출하여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도구"로 삼았기 때문에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가 선택한 배경과 사건을 명확히 드러내는 일이 중요해진다. 이를 위해 앙상블의 활용은 꽤 유용하다. 

 

뮤지컬 <세종, 1446>에서는 앙상블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이방원이 자신이 흘린 피로 조선왕조의 문을 열었다고 외치느 장면에서는 무대의 한 부분에 등장하여 움직임으로 살육의 현장을 재현하고, 1막의 중반 저잣거리에서 개기 일식을 경험하는 백성들로 분했을 때는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기이한 일을 겪었을 때의 무지한 사람들이 어떠한 말과 행동을 취하는지를 보여준다. 2막 초반에는 여진족과의 전쟁을 춤으로, 전쟁 이후 북방 땅에 강제로 이주당하는 백성들의 설움은 노래로 표현한다. 2막의 후반부에는 앙상블 중 솔로 댄서가 등장하여 세종과 함께 글자를 만들어 내고, 마지막에서는 모두가 함께 나와 백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노랫말로 바꿔 부른다. 

 

사극 뮤지컬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그 시대의 인물이나 사건 등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아도 괜찮다. 관객들은 이미 극화된 역사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극 뮤지컬은 '있었던 사실'과 '있음직한 이야기' 사이에 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서 절묘한 줄다리기를 하며 스토리텔링을 진행해야 한다. 

 

2. 야키디의 정리 

 

사극 뮤지컬은 음악으로 드라마를 진행시키는 뮤지컬 장르의 보편적인 속성과 작가가 임의로 선택한 시대와 인물로 재구성된 '사극'이라는 장르의 특수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사극 뮤지컬은 스토리텔링을 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방식을 취하게 된다. 

 

첫째, 사료의 선택과 배제를 통해 '플롯'을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작가가 계획적으로 선택한 소재에서 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건과 사건의 비어 있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메우고 나열된 사건들을 압축하여 이야기의 순서를 재배열하는 방식으로 의미를 강화한다. 이를 통해 작가가 선택한 역사적 사실이 오늘날의 현실과 맞닿아 뮤지컬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더욱 분명하게 표현된다. 

 

둘째, 사료에 한정된 사건에서 벗어나 드라마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자 허구적 인물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극 뮤지컬의 강점이 만들어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실이라는 데서 오는 믿음에 근거하기 때문에 허구의 인물은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잘 어울려진 스토리텔링 안에서 존재해야 한다. 

 

셋째, 뮤지컬이 가진 보편적 양식인 앙상블을 활용하여 사건의 시대적 배경을 보다 시각적, 청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을 바탕으로 한 사극 뮤지컬은 상상력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했던 인물과 사건을 담고 있다는 면에서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사극 뮤지컬은 앞으로도 꾸준히 개발되어 무대에 올려져 관객들을 만날 것이다. 그렇기에 사극 뮤지컬의 스토리텔링 전략을 살펴보는 것은 사극 뮤지컬을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시작점이며, 양질의 사극 뮤지컬을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