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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창고

파팽 자매 살인사건 <잔혹과 매혹>

by 야키디 2023. 8. 10.

영화 <기생충>의 영화 감독 봉준호는 영화를 준비할 당시, 프랑스에서 벌어진 '파팽 자매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살펴 봤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장 주네의 대표적인 작품 <하녀들> 또한, 이 작품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연극이다. 도대체 파팽 자매 살인사건이 어떤 잔혹성과 매혹성이 있길래, 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살인에 주목했던 것일까. 레이첼 에드워즈와 키스 리더가 발표한 <잔혹과 매혹>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1. 사건의 진상 

 

1933년 2월 2일 저녁, 르 망 시 브뤼예르 가 6번지 랑슬랭 가족의 집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6번지는 아내와 딸 주느비예브와 함께 사는 은퇴한 사무 변호사 르네 랑슬랭의 소유였다. 랑슬랭 가족은 발자크 시대 이래의 전혀적인 프랑스의 지방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집은 상당히 넓었고, 1927년부터 파팽 자매를 거주 하녀로 고용했다. 

 

랑슬랭 씨는 2월 2일 오후에 친구들과 브리지 게임을 하고, 저녁 6시 30분경에 아내와 딸이 사위의 집에 저녁식사를 하러 갈 채비를 마치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현관문이 굳게 잠긴 채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고 벨을 울려도 대답이 없어서 굉장히 놀랐다. 더욱이 하녀들이 있는 다락방 창문에는 분명히 불빛이 있었다. 

 

두 시간여가 흐른 후 그는 경찰서에 갔다. 세 명의 경관은 집 뒤쪽의 창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고, 층계참에서 극심하게 난타당하고 허벅지와 다리가 처참하게 잘린 랑슬랭 부인과 딸 주느비에브 랑슬랭을 발견했다. 한층 더 끔찍한 것은 하녀들이 아직 주인 모녀의 숨이 붙어 있을 때 맨손으로 뽑아냈던, 계단 양탄자 위에 놓여 있는 그들의 안구였다. 

 

그들은 열쇠 수리공을 불러 하녀들의 방문을 억지로 열었다. 두 자매, 크리스틴과 레아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었고, 그들과 가까운 바닥에는 랑슬랭 부인과 주느비에브를 때릴 때 사용한 망치가 놓여 있었다. 자매는 자신들이 살인자임을 순순히 인정했다. 크리스틴은 살인이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틴은 "나는 여주인들의 피부를 갖고 싶었어요. 대신 그들이 우리 피부를 갖고요." 라고 말했다. 

피 묻은 칼이 랑슬랭 부인의 시체 밑에서 발견되었고, 또 다른 범죄 도구인 찌그러니 양철 물병은 계단에서 발견되었다. 자매는 즉시 수감되었다. 파팽 자매의 살인에 관한 기사가 이튿날 지역 신문인 <라 사르트>의 1면에 실렸고, 그때부터 크리스틴과 레아 자매의 "무시무시하게 원형적인 명성"이 시작되었다. 

 

2. 파팽 자매는 왜? 

 

크리스틴과 레아는 1901년 결혼한 귀스타브 파팽과 클렘아스 데레의 딸이었다. 1905년에 크리스틴이 태어났으며, 1911년에 레아가 태어났다. 부부는 1913년에 이혼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크리스틴은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레아는 삼촌에게 보내졌다가 후에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둘은 각기 다른 고아원에서 지냈다. 크리스틴은 1920년에 르 망의 푸아리에 가의 하녀가 되었다. 크리스틴과 레아는 레아가 시설에서 나온 1924년 이후의 언젠가 부터 처음으로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틴이 랑슬랭 가에 고용된 것은 1927년 2월이었고, 레아도 두 달 뒤에 고용되었다. 

 

자매와 고용주 사이에 언어적 소통은 거의 없었다. 랑슬랭 부인은 가내 위계가 필수적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후에 랑슬랭 씨는 하녀들과의 대화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고 했는데, 그 시점이 아마도 자매가 그녀들의 어머니와 의절한 이후라고 증언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와의 불화는 자매에게 분명 상처를 주었고, 그때부터 그들은 침울해지고 과묵해졌다. 그 무렵부터 아내나 나 역시 일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공손했고, 우리의 잔소리를 들으려 할 것 같지도 않아 보이는 데다, 흠잡을 데 없이 일을 잘했으므로, 우리는 참았다." 

 

랑슬랭 씨의 마지막 말은 거리를 두는 오만한 태도를 암시한다. "우리는 참았다."라는 표현은 자매의 태도가 변하리라는 기대나 희망까지도 느끼게 하는데, 자매의 살인을 측면에서 보면 그런 기대는 섬뜩한 아이러니다. 게다가 자매가 그들의 고용주들에 대해 어떤 기이한 힘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자매들의 심문 과정에서 몇 가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다. 두 자매 중 나이가 더 많고 지적인 크리스틴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과 그녀와 레아가 범죄에 대한 책임을 동등하게 지기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범죄 직후, 침대에서 나이트 가운을 입고 경찰을 기다리면서 서로 꼭 붙어 있을 때 그들은 서로에게 말했다. "이제 제대로 됐어!" 

 

각기 따로 수감된 그들은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는 것으로 그런 처분에 항의했다.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6개월여 동안 일관되게 더 기이한 행동을 보인 것은 크리스틴이었다. 재판을 받는 6개월여 동안 일관되게 더 기이한 행동을 보인 것은 크리스틴이었다. 7월에는 자신의 눈을 쥐어뜯으려 하는 그녀를 막기 위해 구속복을 입혀야 했다. 이런 이상 행동 때문에 그녀는 그 직후 잠깐 동안 레아와 재회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때 그녀는 황홀경에 빠져 블라우스를 벗어 던지며 "나를 원한다고, 원한다고 말해 줘!" 라고 외쳤다. 그녀는 또 그맘때쯤, 주느비에브 랑슬랭의 옷을 벗긴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나는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라고 답한 적이 있다고 한다. 

 

크리스틴은 수감 중에 자신이 전생에서는 여동생의 남편이었으며, 후생에서도 남편일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크리스틴이 찾고 있던 그 "무언가"가 강한 성적 함축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변호인측 참고인으로 소환되어, "저명한 정신질환 전문가"로 소개된 로그르 박사는 자매의 정신 상태, 특히 범죄의 충격적인 폭력성과 거의 전적으로 동기가 없다는 사실 사이의 깊은 간극에 주목했다. <라 시르트>지에서 박사는 가학 성애적 요소, 자매의 애매한 피해망상, 자매의 기이한 정신적 동반 관계, 언니의 인격에 의해 완전히 소멸된 동생의 인격이 드러난다고 연급했다. 

 

파팽 자매에 대한 평결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단 4분 만에 배심원단의 평결이 내려졌다. 크리스틴은 르 망 시의 광장에서 단두대 형에 처한다는 선고를 받았고, 레아는 10년의 노역형을 선고받았다. 평경을 들은 크리스틴은 피고석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레아는 판결에 대해 즉시 상소했지만 크리스틴은 상소하기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크리스틴은 알베르 르브룅 대통령에 의해 1934년 1월 22일에 종신 노역으로 감형되었다. 그 후 자매는 렌에 있는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이후 크리스틴의 정신 상태는 점점 덕 악화되었다. 그녀는 렌의 공립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이후 자발적 영양실조로 인한 폐 감염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진료 기록은 1944년 렌 시가 전쟁으로 폭격당했을 때 파괴되었다. 

 

레아는 모범적으로 수감 생활을 한 결과, 형기를 2년 단축하여 1943년에 석방되었다. 법적으로 르 망 시에 거주할 수 없게 된 그녀는 르 망에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루아르 강 어귀의 도시 낭트로 갔다. 그녀의 어머니 클레망스는 몇 통의 애정 어린 편지를 보냈다고 말했지만 감옥으로 면회를 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레아는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그녀와 함께 살아야 했다. 1966년 그녀를 찾아낸 한 기자는, 기사 속에서 그녀를 "잿빛이 될 때까지 자신을 연소시키는 과거의 망령"에 비유했다. 그녀는 가정부와 세탁부 일을 하면서, 좁지만 잘 정돈된 방 한 칸에서 평온한 익명의 삶을 살았는데, 평생 동안 크리스틴의 유품들과 랑슬랭 가에서 가져온 레이스를 소지하고 있었다. 

 

3. 사건에 매혹당한 작가들 

 

파팽 사건은 단편 소설, 희곡, 전기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문학적 재현물에 영감을 주었다. 사르트르의 <에로스트라트>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륜의 힘>에 나타나 있는 파팽 사건에 관한 고찰, 그리고 장 주네의 <하녀들>, 웬디 케슬먼의 <이 집 안의 내 자매>, 폴레트 우디예의 전기적 소설 <파팽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초현주의자들은 파팽 자매를 문학적 지도에 그려 넣은 최초의 작가들이었다. 자매들의 '이전' 사건과 초현주의자들이 만든 몽타주 사진인 '이후' 사진이 첨부되어 있는 <혁명을 위한 초현실주의>(1933년)에 폴 엘뤼아르와 벵자맹 페레가 함께 쓴 짧은 글이 그 첫째이다. 그들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부르주의 사회의 중심에서 반란을 일으킨 파팽 자매 살인 해우이는 안정된 질서에 대항하는 폭동을 구현하는 초현주의자들의 방앗간에 완벽한 재료가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 영감을 받아 발표된 작품은 단연 1947년에 처음 상연되고 출판된 장 주네의 <하녀들>이다.  장 주네는 사건에서 밝혀진 주변성, 동성애, 역기능적이거나 부재하는 부모와의 관계를 매력적인 요소로 보았다. <하녀들>은 파팽 사건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파팽 사건의 사실들로부터 현전히 벗어나 있다. 작품 안의 등장인물은 오직 세 명 뿐이다. 그리고 모두 여성이다. 그러나 주네는 남자가 그 인물들을 연기하기 바랬다. 주로 극의 양식화는 그로 인해 초래되는 거리 두기를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장 주네의 <하녀들> 속 하녀들의 이름은 '클레르'와 '솔랑주'이다. 그들의 주인은 그저 '마담'이다. 실제 사건 속 주느비에브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지배적인 쪽은 클레르가 크리스틴이고, 솔랑주는 레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네에게서 단순한 등식은 좀처럼 성립하지 않는다. 동일시 과정은 하녀들이 의식을 연출한다는 사실 때문에 복잡해진다. 

 

그들의 의식 속에서 클레르는 부인의 역할을 맡고, 솔랑주는 클레르의 역할을 맡는다. 막이 올라갈 때, 이미 의식은 진행되고 있다. 클레르는 오만한 부인을 연기하고, 솔랑주는 때로는 겸손하고 때로는 거만한 클레르를 번갈아 가면서 연기한다. 물론 실제 레아의 삶 속에는 이 두 인물들에 대응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작 부분에서 이미 동일화, 탈권, 반사, 분열, 그리고 파팽 사건과 그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논평들에서 텍스트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더 단순한 형태로 나타났던 것들에로의 투사라는 유사한 기제들이 작동하고 있다. 

 

<하녀들>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주네는 그것이 '실제 하녀들이나 사건에 대한 것이라는 모든 암시를 배격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클레르와 솔랑주의 역할 놀이로 인해, 두 하녀들의 관계와 하녀와 여주인의 관계가 융합하면서, 파팽 사건과 암시적인 평행을 이룬다. 

 

<하녀들>의 플롯은 1933년 르 망에서 일어난 사건과 똑같지는 않지만, 상징적인 층위에서 크리스틴과 레아가 서로를 죽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부인이 "엄마"와 동일시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주네가 자신을 끊임없이 파팽 자매의 살인이라는 역동성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일종의 파생적인 개정본을 초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야키디의 생각 

 

레이첼 에드워즈와 키스 리더가 공동 집필한 <잔혹과 매혹>은 파팽 자매 살인사건을 다각적인 과점에서 파고든다. 이 책의 부제가 '20세기 프랑스 지성을 사로잡은 자매 살인자와 끝나지 않는 텍스트의 변주'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프로파일링, 프로파일러에 대한 관심이 많다. 많은 미디어에서 살인 사건에 대한 전모를 파혜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사건의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우리가 더욱 생각해야 할 일은 '왜 그러했는가?' 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찾는 사람들이 '프로파일러'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살인이 벌어지고, 그 살인의 방식이 많은 대중들에게 매체를 통해 공유되는 이 사회에서, 사건을 단순히 소비하지 않고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으로서 살인에 접근한 이 책의 진행 방식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파팽 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