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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창고

피터 게이의 <모더니즘>

by 야키디 2023. 8. 16.

피터 게이의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해 궁금한 모든 것을 담아내겠다고 결심한 책이다. 모더니즘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부터, 모더니즘을 발생시킨 예술가들과 아웃사이더들... 그리고 건축과 연극, 영화, 문학 등에 퍼져 있는 모더니즘까지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가 '모더니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가? 그 질문에 저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모더니즘 정신이라고 말한다. 모더니즘의 정신은 독창성이다. 그렇다면 모더니즘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란 말인가? 피터 게이의 안내에 따라 모더니즘을 파헤쳐 본다.  

 

 

 

1. 나를 놀라게 하라 

 

피터 게이는 모더니즘의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예를 들기가 훨씬 쉽다고 말한다. 모더니즘의 표본들이 회화와 조각, 소설과 시, 음악과 무용, 건축과 디자인, 연극과 영화를 아우르는 너무도 광대하고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어서 도무지 공통의 기원이나 일관성을 찾을 수없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내내 어느 분야든 혁신적인 물건, 어느 정도 독창적인 작품에는 어김없이 '모더니즘'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사실 모더니스트들은 대체로 정치나 사상 면에서 중도보다는 극단을 선호했다. 그들은 중도가 부르주아적이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들은 '부르주아적'이라는 말과 '지루하다'는 말을 동의어로 여겼다. 모든 모더니스트가 동의했던 유일한 신념은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 익숙한 것보다 낫고, 드문 것이 평범한 것보다, 실험적인 것이 상투적인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2. 새롭게 하라 

 

모더니스트들이 서로 눈에 띄게 다르기는 하지만 뚜렷한 공통점도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이단의 유혹, 즉 관습적인 감수성에 저항하려는 충동이며, 또 하나는 철저한 자기 탐구이다.

 

첫 번째 특징인 이단의 유혹은 전통적인 운율에 외설적인 내용을 쏟아 부은 모더니스트 시인, 장식적인 요소를 모두 배제한 모더니스트 건축가, 전통적인 조성과 대위법 규칙을 고의적으로 위반한 모더니스트 작곡가, 단순한 스케치를 완성작으로 전시한 모더니스트 화가들은 새롭고 혁명적인 자기만의 길을 개척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단지 지배적인 권위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워했다. 에즈라 파운드가 1차 세계대전 전에 동료 반역자들에게 제시한 "새롭게 하라!"는 멋진 슬로건은 수많은 모더니스트들의 열망을 간결하게 요약해 준다. 

 

두 번째 특징인 철저한 자기 탐구는 자기 응시를 수반하는 것으로 인습 타파보다 훨씬 더 뿌리가 깊다. 플라톤에서 아우구수티누스, 몽테뉴에서 셰익스피어, 파스칼에서 루소에 이르는 자기 반성적 사상가들이 수세기에 걸쳐 인간 본성의 비밀을 탐구해 왔다. 디드로와 칸트는 계몽주의 성숙기에 인간의 자율성을 활발하게 옹호했다는 점에서 원시 모더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1840년대부터 더욱 대담해진 모더니스트 시인들은 언어의 표현 가능성을 실험하여 전통적인 운문이나 점잖은 주제를 경멸하는 것으로 난해한 일탈을 감행했다. 소설가들은 이전과 달리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극작가들은 몹시도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무대에 올렸으며, 화가들은 오랜 세월 특권을 가져왔던 매체, 즉 자연에 등을 돌리고 자신들 내부에서 자연을 찾기 시작했다. 모더니즘 음악은 평범한 청중들이 듣기에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내면적이고 덜 직접적인 만족을 주는 방향으로 많이 변모했다.  

 

3. 모더니즘 혁명의 조건들 

 

모더니즘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문화적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모더니스트들에게는 적어도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와 사회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불경하고 외설스럽거나 전복적인 것으로 간주된 언어나 회화의 표현에 대한 엄격한 검열은 모더니즘 혁명에 유난히 적대적인 억압의 풍토를 조성했다. 그리고 사회적 관습과 태도가 모더니즘에 호의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모더니즘 시대가 시작될 수 있었다. 또한 모더니즘은 충분히 유복하고 자유로우며, 기꺼이 모더니즘을 지지하는 든든하고 영향력 있는 후원자와 고객들이 없었다면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더니즘은 산업화와 도시화한 국가들의 부에서 자라났다. 많은 예술사학자들이 모더니즘이 주로 도시에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던 빅토리아 시대 도시들은 극장과 공연장을 세워 관객들로 채웠고, 음악학교와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공연할 인력을 모았다. 진취적인 시민들이 19세기 내내 고급문화 시설을 세운 곳도 바로 이러한 도시였다. 

 

결과적으로, 모더니즘 혁명을 위한 필수 선행조건은 마지못해서라도 기존의 예술 관습으로부터의 과감한 일탈을 받아들이고, 아름다움에 대해 유행과 상관없는 견해들이 존재하고, 양식들 간의 충돌을 묵인할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다. 거의 150년 동안 실험적인 극작가들과 시인들, 건출가들과 화사들은 거부와 찬양을 동시에 받으며, 반란에 저항하는 동시에 자극받아 들떠 있는 문화를 과감하게 변화시켰다. 

 

그러나 모더니즘이 고급문화의 향유자들과 생산자들 모두에게 정신적 해방감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예술가들에게 자신들의 자유로운 공상을 진지하게 여겨도 좋다는 면허, 그렇게 오랫동안 주제와 기법을 지시해 왔던 정전을 노려보아도 좋다는 면허, 군림하는 기준을 수정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면허, 아니 더 과격하게 말하면 타도를 외칠지 스스로 결정해도 좋다는 면허, 그 혁명을 완수할 사람이 될 면허를 주었다. 

 

4. 샤를 보들레르 

 

 

 

샤를 보들레르는 모더니즘의 유일한 창시자라고 나설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현대적 의미에서 순수한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고 반문한 뒤, 이렇게 대답했다. "객체와 주체를 동시에 포함하는, 예술가의 외적 세계와 예술가 자신을 동시에 포함하는 암시적 마법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늘 주체의 반응이 극히 중요했다. 1859년에는 직설적으로 파리 살롱을 비평하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나무, 산, 강, 집의 집합, 그러니까 우리가 풍경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름답다고 한다면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통해서, 나 개인적인 시선, 내가 그 풍경에 부과하는 과념과 감정을 통해서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의 예술 작품은 그 향유자들이, 이를 테면 그 작품에 협조했을 때만 완전해진다. 

 

또한 그는 외설과 불경이 범죄라는 인식을 점차 약화시켜 결국 일부나마 부분적으로 없애버렸고, 공적 삶과 사적 삶의 구분을 무너뜨리려고 애썼다. 게다가 그의 모더니즘은 주로 "덧없는 것, 변하기 쉬운 것, 우연적인 것"을 담고 있는데, 대도시의 붐비는 거리를 거닐고 있을 때야 말로 이런 것들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다고 여겼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모더니즘의 독립선언문이 된 것은 그 노골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형식적 명쾌함과 파격적인 주제의 어울림, 즉 단연 가장 염격 한 형식을 갖춘 소네트와 천박한 은유를 잘 융합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시의 도덕과 부도덕은 주제가 아니라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5. 야키디의 정리 

 

피터 게이의 <모더니즘>은 19세기 중반부터 시작해 20세기 내내 사회 전반에 불어 닥쳤던 '모더니즘'에 대해 정리한 책이다. 그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모더니즘의 발생과 성공, 그리고 쇠퇴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모더니즘의 역사서는 아니다. 작가는 모더니즘 시대의 필수 구성 요소로서 화가와 극작가, 건축가, 소설가, 작곡가, 조각가들 중 표본을 선택하였으며, 그 안에서 모더니즘의 적절한 정의, 범위와 한계, 가장 특징적인 표현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 알고 있는 예술가들이 어떤 사상과 목표를 가지고 작품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에우다르 마네, 반 고흐, 멀레이, 랭보, 드뷔시, 아폴리네르, 카프카, 말레비치, 버지니아 울프, 뭉크, 칸딘스키, 몬드리안, 버나드 쇼, 막스 베크만, 쉰베르크, T.S. 엘리엇, 르네 마그리트, 그로피우스, 에즈라 파운드, 마사 그레이엄... 

 

이들은 모더니스트들이었고, 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예술의 방향성이 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 즉 모더니즘 이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이 사회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과거 치열하게 '모더니즘'을 세우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이 어떠한 방향을 추구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들과 우리가 무엇이 다르길래, 이 시대가 '포스트 모더니즘'이 되었을까. 

 

현대가 불안한 사람들이 역사에서 해답을 찾는 것처럼, 혼란으로 가득찬 이 시대를 조금 이나마 이해해 보기 위해 '모더니즘'을 살펴보는 것도 불안을 잠재우는 좋은 방법 중 하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