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블룸이 쓴 <연출가처럼 생각하기>는 연출가의 입장에서 작품을 준비하고, 무대 위에 올리기까지의 전 과정을 정리한 글이다. 저자는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하버즈 대학교에서 연출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과 일본에서 수많은 연극을 연출하였다. 또한, 돈 드릴로, 아리엘 도르프만, 데이비드 헤어, 데이비드 롯지의 희곡을 초연하기도 했다.
이 책은 무대예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두면 좋을 것 같다. 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 알아두면, 그때의 작업을 위해서 자신의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크게 '준비작업, 공연 준비, 연습, 자료들'로 나누어 연극 작업의 과정을 정리하고 있다. 이것들 중에서 현재 연극을 공부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라면 준비작업에 대한 파트가 도움이 될 것 같다. 따라서 그 두 부분의 내용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준비작업 단계에서는 네 가지를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예술가처럼 생각하기, 희곡읽기와 연구조사, 행동을 해석하는 방법, 구조의 외적 분석이다. 각 단계의 핵심이 되는 내용을 살펴보자.
저자에 따르면 '예술가처럼 생각하는 것'은 시대정신을 고민하는 것이다. 연극은 동시대적이어야 한다. 또한 관객의 이해다라서 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을 현재의 해석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데 실패한다면, 연극은 살아 있는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연출가는 늘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나는 당대의 연출가로서 어떻게 이 작품을 오늘의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할 것인가." 연극의 진실성은 연출가의 해석에 대한 감각적 접근에 따라 달라진다.
연출작업의 첫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희곡을 읽는 것이다. 해롤드 클러만은 이렇게 말했다. "연출가가 희곡에 입김을 불어넣기 전에 희곡이 먼저 연출가를 움직이게 하라." 희곡은 단숨에 읽혀야 한다. 만일 단숨에 읽을 수 없다면, 그 희곡은 앞으로 수개월 동안 정성을 쏟을 만큼 연출적 관심을 끌지 못하는 작품인 셈이다. 마이크 블룸은 희곡을 읽는 동안 아이디어와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나면, 그 후에는 참고자료를 찾아서 연구조사를 하고 분석을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은 상호의존적이며, 동시에 진행되는데, 희곡을 한 번이나 두 번 읽은 후에는 모호하거나 분명하지 않은 말들을 이해하려고 다시 살펴본다고 한다.
희곡은 의도를 지닌 태도, 즉 행동(action, 목적이나 욕구의 신체적인 행위의 행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배우나 연출가에게 텍스트에 도달하는 가장 명확한 길은 '행동을 파악하는 것'이다. 행동은 스토리의 엔진이며 스토리와 세포조직이다. 대사는 그 자체에서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체홉의 희곡을 읽어보면 알 것이다. 따라서 희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동을 파악, 해석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에 저자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행동을 정리하기.행동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은 등장인물의 모든 대사를 읽거나, 작은 단락을 순서대로 읽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대사들이 어떻게 행동과 연결되는지, 등장인물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전술을 파악하는 데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 단락 파악 하기. 단락(beat)은 행동의 가장 최소 단위이다. 단락은 연출가와 배우들에게 pause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극작가들에게는 pause도 단락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장면을 단락으로 잘게 나누는 것은 등장인물이 겪는 변화를 더욱 분명하게 파악하도록 해준다.
셋째, 주어진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다. 주어진(givin)이란 표현은 장면의 배경에서 바로 직전의 행동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이 살아가는 세계의 모든 배경과 현재적 조건을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희곡 <유리 동물원>의 배경인 윙필드는 인구밀도가 높은 벌집 같은 아파트촌이며, 모든 등장인물이 살아가는 주어진 상황인 것이다. 등장인물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각기 다를지라도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상황이다. 배우와 연출가의 책무 가운데 하나는 상상하는 것이고, 대본에서 비어 있는 곳에 주어진 상황을 채워 넣는 일이다.
넷째, 행동을 드러내기이다. 연출가의 작업 중 중요한 것 하나가 각 등장인물의 본질적인 행동을 찾는 것이다. 이때에는 변화의 순간을 어디에 두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해석할 여지가 있는 행동의 변화를 정리해 둔다면 후에 만날 배우의 연기를 디렉팅 할 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본을 앞에 두고, 연출가와 배우는 한 장면의 행동에 대해서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겪는다. 행동을 검증하는 하나의 방법은 희곡의 형식적 측면, 바로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때 전체적인 구조(외적인 구조)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기능적인 요소가 있는가? 모든 스토리 요소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기능'이라고 해보자. 일단 중심갈등을 정했으면, 개별 등장인물의 기능과 서사적 요소를 정하는 일은 쉽다. 연극의 사건을 풀어가는 데 가장 책임이 있는 연출가는 개별적인 부분의 기능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걸 알아야 기능을 충족시켜 가면서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둘째, 사건이 있는가? 한 장면의 기능과 관련된 것이 장면의 사건(event)이며 희곡은 사건의 연속이다. 저자는 등장인물 사이의 생각이나 정보의 교환, 대화를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이 사건들 사이에서, 연출가는 장면에 구체성을 부여한다. 그러면 장면의 행동을 규정하기가 쉬워진다. 행동과 사건은 조화를 이루고, 해석은 분명해지고, 일관성을 지니게 된다.
셋째, 건축적 구조가 발견했는가? 한 장면의 또 다른 외적 특징을 '건축적 구조'라고 부를 수 있다. 이야기나 농담을 말할 때에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야기의 구조적 요소를 활용한다. 평범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핵심적인 정보를 숨겨두었다가 충격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듣는 이를 사로잡으려 한다. 배우들이 장면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있다면 연출가의 역할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구조를 질서 있게 조화시키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이때 연출가는 '전환점'을 찾아야 하는데, 전화점은 단락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단락의 변화는 한 장면에서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정말로 중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지지해 준다.
넷째, 전형적 양식이 필요한가? 건축적 구조에 덧붙여서 연출가들이 친숙해야 할 것은 희곡에 담겨 있는 범지구적 패턴이다. 예를 들면, 체홉의 희곡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각 막은 개별적으로 다른 의식적 절차를 취하고 있다. 구조에 대한 인식은 희곡에서 다루는 사회적 사건을 연기하거나 디자인하는데 영향을 준다. 극작가는 항상 장르에 작품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장르는 모든 희곡에서 아주 중요한 범지구적 요소이다. 작업을 하고 있는 스토리의 패턴을 아는 것은 연출가에게 작품의 적절한 분위기와 양식을 빚어내는 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정보출처: 마이클 블룸 저, <연출가처럼 생각하기>, 연극과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