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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창고

방현석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 패턴 959>

by 야키디 2023. 9. 3.

소설가이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방현석이 저술한 서사 창작 방법론이다. 정성희 드라마 작가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매혹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방법론이 부재한 현실에서 서사예술에 도전하는 습작생들에게 무엇보다 반가운 책이라고 했다. 이 책은 이야기 속의 '질서'를 마련하고 있다. 질서의 핵심은 서사 창작방법론이다. 

 

이 책은 매력적인 이야기를 완성하는 9 가지 유형의 첫 장면과 5가지 유형의 마지막 장면, 9가지 유형의 플롯으로 나누어 서사 패턴을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 패턴 959'인 것이다. 이 책은 각각의 창작방법론이 지닌 특징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패턴별로 대표적인 소설과 영화, 드라마, 신화와 민담을 예로 들고 있다. 따라서 소설과 드라마, 영화를 다루는 창작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패턴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1. 첫 장면의 아홉 가지 유형 

 

첫 장면은 독자나 관객이 실제 세계와 서사 세계 사이에 놓인 경계에서 자연스럽게 서사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상당수의 서사 작품들은 흔히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이나 정경 묘사로 시작하는데, 이런 방법이 의도하는 바는 독자들의 경계심을 푸는 것이다. 

 

1) 배경 제시형 

 

배경 제시형 첫 장면은 사건이 벌어질 시·공간에 대한 설명과 묘사로 이뤄진다. 여기서 형성화된 정조는 서사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배경 제시형을 이용한 대표적인 작품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톨스토이의 <부활>,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을 들 수 있다.

 

배경 제시형 첫 장면을 택한 영화로는 조 라이트 감독의 <오만과 편견>, 롭 마샬 감독의 <시카고>, 웨스 앤더슨 감독의 <다즐링 주식회사>,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사운드 오브 뮤직>이 대표적이다. 

 

2) 일상 제시형 

 

일상 제시형 첫 장면은 인물이 어떤 사건에 던져지기 전의 모습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묘사한다. 대체로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이 그려지는데, 이 경우 독자나 관객은 서사 세계로 들어가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후, 일상 유지와 일상 파괴의 경계에서 독자와 관객들은 더 깊숙한 서사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일상 제시형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으로는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오정희의 <동경>, 박경리의 <토지> 등을 꼽을 수 있다. 일상 제시형 첫 장면은 드라만 영화에서도 흔히 쓰인다.

 

오수연이 극본을 쓰고 윤석호가 연출한 드라마 <가을 동화>의 첫 장면에서는 한 남매의 평화로운 일상이 그려진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은 여동생이 남의 집 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한다. 이 평화로운 일상과 파괴된 일상의 극적인 대비는 관객을 서사의 세계로 잡아끄는 강력한 힘이 된다. 

 

3) 인물 제시형 

 

인물 제시형 첫 장면은 인물의 성격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와 관객에게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짐작하게 하고 사건의 전개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첫 장면을 채택한 서사들은 인물의 성격이 운명을 지배한다.

 

인물 제시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존 쿳시의 <추락>,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등이 있다.

 

첫 장면을 인물 제시형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꼽을 수 있다. 1971년 개봉한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첫 장면은 내레이션을 이용해서 주인공인 알렉스란 인물을 제시한다. 이렇게 첫 장면에서 알렉스와 그의 일당이 어떤 청소년들인지 제시하고, 앞으로도 다양한 범죄행위를 벌여나가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4) 회상형 

 

모든 이야기의 본성은 지나간 일들에 대한 회상이다. 대다수의 작가들은 회상형 첫 장면의 사용을 가능한 피하지만, 뛰어난 작가들은 이 형식을 사용하여 소박하고 진솔한 회상의 효용성을 극대화한다.

 

이 회상형 첫 장면을 이용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르 클레지오의 <사막>, 밀란 쿤데라의 <농담> 등을 들 수 있다.

 

회상형의 첫 장면을 사용한 영화로는 브래트 피트가 주연한 <가을의 전설>을 꼽을 수 있다. 영화는 원스텝이란 인디언이 평생에 걸쳐 자신이 지켜보았던 러 드로우 일가의 일대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회상형 첫 장면은 시공간에 제악 받지 않고 관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테도 유용하다. 

 

5) 전체 압축형 

 

전체 압축형 첫 장면은 서사 전체의 문제의식을 아우르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거나 은유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훈의 <남한산성>, 폴 하딩의 <킹 거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등이 있다. 첫 장면에 전체 압축형이 쓰인 영화로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마이클 만 감독의 <라스트 모히칸>을 꼽을 수 있다. 

 

6) 사건 발생형 

 

사건 발생형 첫 장면은 인물과 배경에 대한 설명이나 인과 관계의 제시는 뒤로 미루고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을 먼저 제시한다. 이를 접한 독자나 관객은 사건에 매혹되어 자연스럽게 다음 페이지로 시선을 옮긴다.

 

사건 발생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사랑과 다른 악마>,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등이 있다. 

 

7) 행동형 

 

행동형 첫 장면은 인물의 습관적인 행위에 집중한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행위라 할지라도 반복성을 띄면 사건을 추동하고 국면을 전환하며 의미와 상징성을 획득한다. 그래서 행동형 첫 장면으로 성공한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모방 욕구까지도 불러일으킨다.

 

대표적인 행동형 첫 장면의 작품으로는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이사벨 아옌데 <영혼의 집> 등이 있다.

 

행동형 첫 장면의 대표적인 영화는 대니 보일 감독의 <트레인스포팅>이다. 첫 장면은 주인공 렌튼과 스퍼트가 도심의 거리를 전력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어빈 웰시의 동명 소설을 영화한 것으로, 1980년대 말 경제 공황기에 도시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희망 없는 청춘들의 절망과 분노를 그리고 있다. 

 

8) 대비 상징형 

 

대비 상징형 첫 장면은 인물이나 사물, 이미지의 대비와 충돌의 통해서 서사 전개에 필요한 추동력을 얻는다. 흔히 인물 간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서 필연적인 갈등을 암시한다.

 

대비 상징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파울로 코엘료의 <오 자히르> 등이 있다. 대비 상징형의 영상 미학을 보여주는 영화는 니나가와 미카 감독의 <사쿠란>이다.

 

<사쿠란>은 오프닝 영상에서부터 어항 속에서 유영하고 있는 금붕어를 최대한 클로즈업해 스크린 전체를 채운다. 뒤이어 금붕어와 같은 색조로 화장을 하는 기녀 키요하를 보여준다. 영화 <사쿠란>의 첫 장면은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어항 속에 갇혀 살아가야 하는 금붕어와 기녀의 운명을 대비시키는 동시에 이 영화가 다룰 전체 서사를 상징적인 색상과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9) 의문 유발형 

 

의문 유발형 첫 장면은 독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한다. 단서를 친절하게 제공하기보다 비일상적인 사건이나 상황을 기술하여 독자를 매혹한다. 드물지만 자연법칙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사건이나 상황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의문 유발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레이먼드 카버의 <제리와 몰리와 샘>, 오상원의 <모반>, 푸옌테스의 <아우라>, 이순원의 <은비령>, 조해일의 <매일 죽는 사람> 등이 있다. 

 

 

2. 마지막 장면의 다섯 가지 유형 

 

모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감동과 여운으로 남도록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서사예술이 독자와 관객들에게 어떤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가는 마지막 장면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훌륭한 서사는 어느 한 부분의 성취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지만 미학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말은 관객을 실망시키는 치명적인 요인이다. 뛰어난 작품은 독자나 관객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해서 질문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1) 내화형 결말 

 

서사 작품이 결말에 도달했을 때, 그 서사 속의 인물이 내적인 성숙을 이루는 유형을 내화형이라고 한다. 전쟁의 허구성과 무의미함, 잔인성을 놀라운 필치로 그린 바오 닌의 소설 <전쟁의 슬픔>은 세계 16개 국어로 번역되어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능가하는 전쟁소설로 평가받았다.

 

바오 닌은 이 소설을 통해 전쟁을 옹호하는 모든 정서와 논리를 분쇄해 버리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전쟁이 "행복보다 높은" "고상한 슬픔"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야기가 종착점에 당도했을 때, 다른 높이에 도달해 있는 인물들의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 내화형 결말이다. 

 

2) 확장형 결말 

 

확장형 결말은 서사 속에서 인물에게 형성된 의식이 주변으로 확장되거나 외부로 표출되는 유형이다. 개인이 처한 문제 상황이 사회적인 은유로 확장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내화형 결말은 인물의 내적 변화가 사회적 문제로 분출되거나 확장되지는 않는다. 주인공 자기 자신만 변하는 것이다. 반면 확장형 결말의 유형은 주인공의 의식 변화가 외부로 확장된다. 많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소설들이 이런 확장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유형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들 수 있고, 영화로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를 들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에리카는 어머니에게 욕망을 부끄러운 것으로 주입받으며 자란 피아니스트이자 교수이다. 그녀는 학생들이 한 음이라도 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여자인데, 남몰래 포르노를 보거나 타인의 카섹스를 훔쳐보며 성욕을 채운다. 급기야 그녀는 피아노를 치는 공대상 클레머에게 자신을 강간하도록 요구한다. 이를 받아들인 클레머는 에리카를 가학적으로 강간하고, 그로 인해 깊은 상처를 입은 에리카는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 평생 동안 괴롭히던 억압을 향해서 칼을 꽂는 행위로 내면을 폭발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자기 파괴적 행위는 문을 박차고 비틀비틀 걸어 나가는 장면을 통해서 외부로 확장된다. 

 

3) 반전형 결말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전복적 결말로 서사를 마무리하는 유형을 반전형이라고 한다.

 

전복적 상상력의 정점에 모파상의 <목걸이>와 레이몬드 커버의 <당신, 의사세요?> 같은 작품이 있다. 반전형 결말은 독자와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호시탐탐 독자와 시청자들의 기대를 배신할 기회를 노린다. 작가가 독자의 기대를 배반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가 바로 마지막 장면이다.

 

신상웅의 소설 <돌아온 우리의 친구>의 경우, 친구들은 술집에 모여 중동으로 돈 벌러 갔다 돌아오는 친구를 어떻게 환영할 것인지를 의논한다. 드디어 그들은 귀국하는 친구를 맞으러 공항으로 가고, 독자들은 친구들의 시끌벅적한 재회를 예상한다. 그러나 정작 공항에 도착한 것은 친구의 뼛가루다. 전날 친구들이 모여 한 이야기는 모두 죽어 돌아오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였다. 작가는 이런 극적 반전을 통해 한 시대, 한 인가의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4) 회귀형 결말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이어지거나 겹치는 유형을 회귀형 결말이라고 한다. 회기형의 마지막 장면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결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중간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에는 처음 이야기를 시작했던 자리로 돌아옴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강조하는 기법이다.

 

회귀형 결말을 가진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카미의 <이방인>과 아옌데의 <영혼의 집> 등이 있으며 영화로는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아이다호>가 있다.

 

<아이다호>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으로의 회귀다. 마이크역을 맡은 리버 피닉스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곳으로 실려 간다. 길을 끝없이 열려 있고, 그의 방황은 다시 시작된다. 

 

5) 개방형 결말 

 

개방형 결말은 독자와 관객의 몫을 가장 많이 남겨두는 유형이다. 이러한 유형의 결말은 독자와 관객의 몫을 가장 많이 남겨두는 유형이다. 이러한 유형의 결말은 인물의 이어지는 삶이나 사건의 파급, 이야기의 은유를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심지어는 대단원이 어떻게 막을 내릴지조차 독자의 상상에 맡겨버리기도 한다.

 

이런 유형의 마지막 장면을 가진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가 있다. 아베 코보의 문제작 <모래의 여자>는 곤충 채집을 하러 떠난 남자의 실종을 둘러싼 이야기다.

 

주인공 니키 준페이의 실종에 대해서 사람들은 남녀의 문제로 인한 도피나 자살 등 갖가지 추측을 한다. 곤충채집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의 아내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니키 준페이의 실종 사건에 대한 법원의 확정 판결문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이 확정 판결문이 니키 준페이가 사랑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돌아올 수 없게 된 것인지를 확정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독자는 니키 준페이가 모래 구덩이에 갇혀 끊임없이 삽질을 하며 겪게 되는 심리적 변화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환상적 이야기를 받아들일지, 실종사건과 법원의 확정 판결문만을 수용할지는 오직 독자의 몫이다. 개방형 결말을 가진 영화로는 홍상수의 <북촌 방면>,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가 사는 피부>,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