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는 국내에서는 평전을 잘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특히 모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발자크 평전>을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했는데, 웬만한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다. 세계문학전집의 작가 중 하나로 숨죽여 있던 발자크가 이렇듯 열정적이고, 어리석고, 흥미진진한 인물이었다니...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 안에서 발자크는 다시 살아난다.
그런 그가 쓴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는 1928년에 펴낸 <인생을 작품으로 쓴 세 작가>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츠바이크는 이 책을 펴내기에 앞서 1920년에 <세 명의 거장>, 1923년에는 <마신과의 싸움>을 발표했다. 이 세 권의 책은 역사적으로 커다란 족적을 남긴 문학가 9명에 대해 각각 3명씩 묶어 서술한 독특한 형식의 평전이다.
이 시리즈에서 다뤄진 문학가 9명은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휠덜린, 클라이스트, 니체다. 츠바이크가 남긴 이 평전은 예술가들의 감춰진 삶의 궤적과 행로룰 추적해 밝혀낸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그들의 내면세계와 심리를 입체적으로 구성함으로써 그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는 겉보기에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세 작가를 하나의 끈으로 연결한다. 그의 관점에서 세 사람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회귀하는 과정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찰과 표현의 세 단계를 대표한다. 여기서 세 단계란 원초적이고 소박한 자기 보고의 단계, 심리적 자기 관찰의 단계, 도덕적 자기 재판의 단계이다. 그리고 느낌상 알 수 있듯이 이 단계를 대표하는 작가는 순서대로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다.
카사노바는 18세기 후반에 사제, 군인, 도박꾼, 기사, 스파이 등의 신분으로 유럽 전역을 무대로 삼아 활동한 모험가, 또는 수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나눈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젊은 시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이탈리아로 번역했고, <폴란드 역사>를 쓴 작가이기도 했다. 또한 직접 연극 대본을 쓰기도 했으며, 연극 전문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가 말년에 쓴 회고록은 사후에 대단한 명성을 안겨주기도 했다. 츠바이크는 그 회고록을 바탕으로 그의 인생을 재구성한다. 츠바이크에 따르면 카사노바는 "도덕적으로 미화하지 않고, 달콤한 시어로 장식하지 않고, 철학적으로 위장하지도 않고,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세세하게, 정열적으로, 위험스럽게, 무분별하게, 재미있게, 비열하게, 음탕하게, 뻔뻔스럽게, 파렴치하게, 하지만 언제나 흥미진진하게, 예기치 못했던 일들을 이야기" 했다.
스탕달도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한 글을 쓰기 위해 독창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츠바이크에 따르면 그것은 "빠르게 글로 옮긴 후 다시 읽어보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 "수치심과 걱정을 물리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재판관, 검열관이 내면에서 깨어나기 전에 자신의 고백을 불쑥 들이대기와 화가로서가 아니라 순간을 찍는 사진사처럼 작업하기", "자기 안에서 늘 들끓는 것이 인위적이고 연극적인 포즈를 취하기 전에 그 특징적인 움직임을 그대로 잡아내는 것"이었다. 스탕달은 쾌락의 심리학을 알고 있었고, 방탕하다 싶을 정도로 그것에 푹 빠졌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은 하지 못했지만,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쓴 세 권의 자전적 소설을 통해 영혼에 대한 탐구의 중요한 성과를 후세에 전해 주었다.
톨스토이는 자신과 인류의 영혼을 탐구한 작가이자 인류에 대한 교육자였으며 위대한 사상가이자 행동하는 실천가였다. 그는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지만, 정작 그 자신은 자기완성을 향한 고행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과 혼란, 불안에 시달린 지극히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게 츠바이크의 생각이다. 그러나 츠바이크는 바로 이런 톨스토이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그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다. 톨스토이는 끊임없이 자아탐구를 통해 삶의 위기를 창조의 계기로 승화시켰고, 인류를 위해, 그리고 인류와 함께 살겠다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끝까지 자기 자신과 싸웠다. 츠바이크는 바로 이 점에서 그가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었다고 본다.
※ 책 속의 밑 줄
영원성을 이루는 데 중요한 것은 영혼의 형식이 아니라 한 인간의 충만함이다. 오직 강력한 밀도만이 영원해질 수 있다. 불멸성은 인간의 순수함이 아닌 일관성을 요구한다. 불멸성은 도덕이 아니라 오직 밀도에 의해서만 좌우된다. (105p)
자신에게 한 번 솔직했던 사람은 영원히 솔직하며, 자신의 비밀을 알아낸 사람은 모든 사람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 (113p)
에고티즘은 '에고이즘'을 잘못 쓴 것이 아니다. 비속하고 더러운 잡종의 형제인 에고이즘과 에고티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에고이즘은 시기심이 많고, 대범하지 못하며, 만족할 줄도 모른다. 에고티즘은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빼앗으려 들지 않는다. 에고티즘은 귀족적인 고고한 태도로 돈벌레들에게는 돈을, 명예욕에 사로잡힌 자들에게는 관직을, 야심가들에게는 훈장과 깃발을, 문인들에게는 비누거품 같은 명성을 허용한다. (159p)
톨스토이에게 익숙함은 낯섦을 해소시켜 주고 공포를 극복하게 해 준다. 그 결과 30년 후에는 죽음과의 싸움을 통해 외부이 것이 내부의 것이 되고, 적이 일종의 벗이 된다. 그는 죽음을 자기 가까이로 끌어들이고, 내면에 받아들이며, 삶의 영적 요소로 만든다. (224p)
톨스토이는 자신의 완고한 정신에 확신을 줄 수 없었기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했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었기에 인류를 변화시키려고 했다.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종교는 그렇게 생성됐고, 세계의 개선은 영혼에 위협을 받는 단 한 사람의 자기도피로부터 이루어졌다. (26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