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역사를 통해 남들과 다른 관점에서 뮤지컬을 바라봤던, 예술가적 의지를 가진 몇 명의 창작자들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이다. 뮤지컬을 쇼 비즈니스가 아닌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미국 현대 뮤지컬의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생애를 살펴보며 뮤지컬이 가질 수 있는 '예술적 매력'을 느껴보자.
스티븐 손드하임은 1930년 뉴욕에서 출생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이혼과 어머니의 냉대로 인해 외로웠다. 그러나 어머니의 친구였던 도로시 해머스타인으로 인해 뮤지컬 황금기를 이끌었던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집에 드나들 수 있게 되면서 뮤지컬 창작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그의 첫 작품은 고등학교 재학 중 만든 <By George>이다. 이 작품은 손드하임이 직접 작사, 작곡한 것으로 'George School'에 다니면서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엮은 코미디 뮤지컬이었다. 이 작품으로 친구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자 해머스타인에게 직접 가져가 평가를 받기로 한다. 하지만 해머스타인은 이 작품을 '지금까지 보았던 뮤지컬들 중의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는 <By George>의 대본과 악보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해 주었다.
훗날 손드하임은 이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그날 오후에 작곡과 뮤지컬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평생에 걸쳐 배웠을 것을 다 배워 버렸다." 라고 술회한다. 이때의 경험으로 손드하임은 본격적으로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간다. 그 후 'Williams College'에 입학한 그는 <All That Gitters>, <Phinny's Rainblw>등의 뮤지컬을 만들어 공연했다.
스무 살에 조기 졸업을 하게 된 그는 젊은 뮤지컬 작곡가에게 주어지는 허친슨 상을 받았다. 이 상은 작곡 기법을 2년 간 연구할 수 있는 비용 3천 달러를 상금으로 주는 유서 깊은 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작곡법 보다는 드라마 안에 음악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손드하임은 이 상금을 전위 작곡가인 밀튼 배빗에게 사사 받는데 사용한다.
배빗은 기존의 쇼툰 공식인 'AABA'를 벗어났을 때 더욱 드라마틱한 음악을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후에 보여지는 손드하임 특유의 난해한 현대 클래식 분위기와 수학적 화음의 음악 특징은 이때에 확립된 것이다.
그 후 1956년 브로드웨이 연극 <The Girls of Summer>의 삽입곡과 TV 시리즈 <Topper>의 대본을 쓰면서 자신만의 뮤지컬을 완성해 나갔다. 이 시기에 <Saturday Night>이라는 작품이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제작자였던 라뮤엘 에이러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자 불발 되었다.
따라서 1950년대 손드하임은 작곡가보다는 작사가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다. 손드하임의 브로드웨이 데뷔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하고 아서 로렌츠가 대본을, 제롬 로빈스가 안무를 맡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작사를 맡았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손드하임의 위치는 거장들에 가려져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심지어 뉴욕 타임즈의 리뷰란에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 그의 실력을 눈여겨 본 아서 로렌츠에 의해 발탁되어 <집시>(1959)의 작사가로 참여한다. 이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손드하임은 뮤지컬 작사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1962년에는 <로마에서 일어난 기묘한 사건>으로 작곡가로 데뷔한다. 내용은 로마 시인 플로투스의 코미디를 원작으로 한 일종의 광대극이다. 이 작품은 로마 시대와 20세기 미국을 이어주는 아메리칸 벌레스크 혹은 현대적인 파스(Farce)와 뮤지컬의 결합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어 1964년에는 <누구나 휘파람을 불 수 있지>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프리뷰 12회를 포함해 총 21회 공연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속사포처럼 퍼부으면서도 리듬감을 잃지 않는 대사와 코믹한 보이스 칼라와 조화를 이룬 음악으로 작곡가로서의 능력을 알리며 매니아 층을 형성 했다.
이후 <내가 왈츠를 들었나?>(1965)에서 작사를 맡으며 70년대 들어서는 '콘셉트 뮤지컬'의 양식을 확립하기 위한 토대를 형성했다. 뮤지컬 <컴퍼니>는 조지 퍼스가 대본을 쓰고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사, 작곡한 것으로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와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내용은 로버트라는 뉴요커의 35번째 생일 파티를 위해 모인 주변 친구들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소통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네 개의 단막극으로 엮어져 한 편의 뮤지컬로 완성되는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러티브를 과감하게 없애 버리고 맨하튼에 거주하는 중산층의 삶을 에피소드 형식의 짧은 스냅숏으로 표현해냈다.
이 작품을 본 연극 평론가 고트프리드가 1979년 '뉴요커'지에 <컴퍼니>를 설명하기 위해 '콘셉트 뮤지컬'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이 용어를 평론계가 받아들이면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1970년 토니상 1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6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손드하임의 대표작으로 알려진다.
1970년대는 스티븐 손드하임과 해롤드 프린스의 협력으로 발표된 이른바 '콘셉트 뮤지컬'이 브로드웨이를 논란과 놀람으로 물들게 한 시기였다. <컴퍼니> 이후 발표한 <폴리스>(1971)는 뮤지컬 레뷔 형식의 '지그필드 폴리스'와 유사한 '와이즈먼 폴리스'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나 벌어지는 내용이다.
손드하임은 과거의 폴리스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의 음악에 보드빌 시대의 상징이었던 '어빙 벌린'을 연상시키는 레뷔 스타일을 적용했고, 가사는 지극히 현대적인 어투로 진행해 과거의 꿈과 현재의 고통을 대비시켰다. 그러나 해피엔딩이 아닌 심도 깊은 내용과 뉴욕 타임즈의 혹평, 높은 제작비로 인하여 80만 달러의 적자를 내고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1971년 토니상 7개 부문을 수상했다.
1973년에 발표된 <리틀 나잇 뮤직>은 사랑과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는 작품으로 19세기 스웨덴 상류 사회의 인물들이 청년, 중년, 노년의 그룹으로 나뉘어 등장한다. 작품의 외적 스타일은 마치 유럽의 오페레타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모습이었다.
손드하임은 작품 전체에 4분의 3박자인 왈츠를 주로 사용했고, 4분의 4박자 곡에서도 그 안에 다시 4분의 3박자를 배치시켰다. 이외에도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황에 맞게 미뉴에트, 폴로네즈, 바르카롤 등의 음악을 사용했다. 손드하임의 서정적이며 멜로드라마에 어울리는 총체적인 작곡 스타일은 그 후에 발표된 <스위니 토드>나 <열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76년에는 <태평양 서곡>을 발표한다. 내용은 1853년 미국의 군함에 의해 강제 개항을 당한 일본의 이야기를 일본인 시각에서 표현한 작품이다. 손드하임은 이 작품에서 일본의 '하이쿠' 스타일을 가사에 적용하는 색다른 시도를 하였다.
이후에 발표된 <스위니 토드>(1979)는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스위니 토드'라는 이발사의 잔혹한 복수극을 다룬 동명의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것이다. 암울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작품에서 손드하임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을 선보인다. 뮤지컬 한 편이 마치 '교향곡'처럼 인식되도록 노래와 대사를 모두 유기적으로 통합하였다. 이 작품은 1979년 토니상을 완전히 휩쓸었으며 1984년부터 뉴욕시티 오페라단의 정기상연 작에 포함되었다.